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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박지성이 대북 삐라보다 강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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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스포츠·드라마·영화 등 남한의 대중문화가 북한 내부에도 퍼지고 있다. 북한 당국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남한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4일 조선중앙TV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에콰도르의 리가 데 키토의 축구 경기를 녹화 중계했다. 방송 중이던 해설자는 맨유의 박지성 선수를 놓고 “두 몫을 할 수 있는 주력을 가진 남조선 팀의 핵심 선수”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12월 17일 개성공단을 시찰하기 위해 온 김영철(국방위원회 정책실 국장) 북한군 중장은 남한 측 입주 기업인들과 만나 남측 드라마 ‘이산’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 ‘이산’에 ‘백성은 물이고 임금은 물 위에 뜬 배’라는 대사가 있는데 민심이 흔들리면 뒤집힌다”는 말을 했다. 그는 “개성공단의 인원 축소는 남한 정부의 대북 정책 탓”이라며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했다. 우리 측 당국자는 “남한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남한 드라마의 대사까지 인용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분석했다. 이뿐 아니다. 통일연구원이 지난달 발간한 ‘북한 체제의 안정성 평가’ 라는 책에서도 북한에 퍼지고 있는 남한 문화의 단면이 소개돼 있다.

책에는 “중국 상인을 통해 비디오 플레이어와 CD플레이어가 북한 사회에 보급되면서 지방 대도시와 연선(국경) 지역에서 ‘아래 테이프’로 불리는 남한 영화·드라마가 급속 확산되고 있다”는 탈북자의 진술이 소개돼 있다. 또 “TV·비디오를 수리하는 사람들이 영상물을 빌려 준다. CD 한 장을 빌리는 값은 2007년 1000∼3000원으로 쌀 1㎏ 가격”(40대 탈북 공장 관리직 여성)이란 대목도 있다. “서로 다른 녹화물을 바꿔 본다”(40대 여성 탈북 의사)거나 “단속이 심한 지역에선 들킬까 봐 소리는 죽인 채 그림만 보고, 인민반장이 미리 비디오 단속을 귀띔해 주기도 한다”(30대 남성 탈북 교사)는 얘기도 나온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남한의 대중문화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4월 방북했던 임동원 대북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당시 남한의 TV 사극 ‘여인천하’ 얘기를 꺼낸 뒤 “80편까지 봤다”고 말한 일화가 있다. 그러자 배석했던 이명수 인민군 작전국장, 김용순(2003년 사망) 대남담당 비서도 각각 30편, 29편까지 봤다고 거들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폐쇄사회인 북한에서 언어적 장벽이 없는 남한 문화는 주민들 사이에 오락거리로 쉽게 통할 수 있다”며 “북한 내 시장을 통한 거래 확산이 남한의 영상물 유통에도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남한 문화의 확산은 정치적 대북 메시지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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