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조>무력감 탈피해야 할 미국 政街-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21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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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워싱턴 정가가 최근 다시'정체(停滯)현상'을 보이고 있다.과거 미국 대통령들과 의회지도자들은 타협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크게 비난받곤 했다.그러나 최근에는 훨씬 더 신랄한 비난이 나오고 있다.미국 정치지도자들은 이제 어떤 문제에도

반대의견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무사안일한 의회와 그만큼이나 무력한 백악관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연임이 시작된 직후 나타난 이같은 마비현상은 미국과 나아가 전세계의 장래에 실로 실망스러운 일이다.다만 겉보기보다 사태가 중증이 아니라는 점은 다행이다.

새로 구성된 미하원은 출범 이후 몇개월간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해온 게 사실이다.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은 균형예산 편성문제와 관련,세금감면의 중요성을 의도적으로 묵살함으로써 보수파들로부터 반발을 샀다.근래에는 중국등 아시아 국가들을

순방하면서 성과를 내 오랜만에 칭찬을 듣고 있다.

그러나 깅그리치 의장도 최근 봅 도울 전공화당 대통령후보로부터 파격적인 조건으로 돈을 빌려 하원윤리위원회에 벌금을 내려 한다는 사실이 전해짐으로써 클린턴 대통령을 상대하기에 도덕적으로 버겁게 됐다.

백악관도 마찬가지로 화이트워터사건과 대통령선거자금 스캔들의 여파로 기선을 잡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같은'지도력 위기'현상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새 하원의 지난 5개월여 회기중 61개 법안이 투표에 부쳐져 이중 소수만이 통과됐다.이는 의회 의사결정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던 지난 93년과 95년 당시의 하원과 비슷한 수준이다.그러나 그 당시 하원은 특별한 상황이었다.93년은 12년만에 민주당 대통령이 탄생했던 해였으며 95년에는 처음으로 수십년만에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 때였다.

현재 하원에는 30여년만에 처음으로 균형예산을 편성하는 문제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유럽진출 인준,그리고 중국과의 안정적인 무역관계 구축등 주요한 사안들이 계류돼 있다.

특히 백악관과 공화당 지도자들이 내달초까지 역사적이라고 할만한 균형예산의 윤곽에 합의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무역분야의 경우 미 행정부 관리들과 풀죽은 의회내 자유무역주의자들의 추진력 부족현상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

문제나 전세계 무역협상에 나쁜 결과를 낳게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미국 지도자들이 계속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심각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클린턴 대통령과 하원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들이 지금보다 더 잘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문제다. [정리=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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