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실기업 흑자도산 방지책 - 금융기관 공동지원 협약안 왜 나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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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진통 끝에 18일 확정된 금융기관 협약안은 기업을 살리기 위해 자율경쟁 원칙을 잠시 접어둔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연쇄부도 사태를 우려한 나머지 급기야 외국에서는 예를 찾아볼 수 없는'한국형 금융.기업복합체'를 만들어낸 셈이다.이 협약안의 골자는 부실징후가 보이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돈을 많이 빌려준 금융기관들끼리 채권금융기관협의회를 만들어 해

당기업을 살릴지,부도내버릴지 결정한다는 것이다.

먼저 해당기업에 대해 회계사등 전문인력을 동원해 실사한뒤 회생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금융기관들끼리 협조융자등 공동보조를 취한다는 것이 골자다.

반면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빠른 시일안에 법정관리나 3자인수.청산등의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다.

이런 협약은 어느 기업이 조금 어렵다 싶으면 금융기관들,특히 단기금융기관들이 어음을 마구 돌려 대출금을 회수하러 나서는 바람에 멀쩡한 기업조차 쓰러지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최근 자금난에 쫓기는 진로그룹이 좋은 예다.이 그룹은 최근 들어 거의 매일 5백억원 안팎의 어음을 막느라 정신이 없다.이 어음 가운데 90%는 종금.금고.할부금융등 2금융권 금융기관들이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해 담보로 잡고 있던 어음을 교환에 돌린 것이다.

협약은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일단 채권금융기관협의회가 소집되면 그날부터 해당기업의 어음.수표는 교환에 돌리지 못하도록 했다.설사 어음을 돌리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통상 교환에 돌아온 어음을 못막으면 부도처리되고 그 결과 해당기업의 당좌거래가 정지된다.그러나 앞으로는 일단 협의회가 지원결정을 하면 어음을 돌리더라도 해당기업에 당좌거래정지조치를 내리지 않는다는 것.종금사들이 줄곧 반대해온 이유

도 이 부분에 있다.채권금융기관협의회는 은행들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데,일단 협의회가 구성되면 종금사들은 돈을 회수하지 못한채 울며 겨자 먹기로 끌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

아무튼 일단 금융기관 협약이 타결되긴 했으나 남은 문제들도 많다.무엇보다 자율경쟁의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제도라는 점에서 시행기간을 최대한 단기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한 시중은행장은“우선 고비를 넘기기 위해 도입했지만 자칫하면 금융기관들이 집단적으로 부실화할 가능성도 있고,책임경영이 뒷걸음칠 우려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할부금융.파이낸스등 여신전문 금융기관이나 외국은행들의 반발도 문제다.

이밖에 공정거래법상 담합행위나 우월적 지위 남용문제,외국으로부터의 통상마찰 유발문제등도 복병으로 지적되고 있다. 〈손병수 기자〉

[ 협약 주요내용 ]

▶협약 가입대상=은행과 종금.생명보험및 증권사

▶채권금융기관 협의회 구성=전월말 현재 은행여신 2천5백억원 이상인 기업 또는 계열기업군 가운데 경영위기에 처한 부실징후기업의 경영정상화 여부를 심의.결정하기 위해 해당기업에 채권이 있는 금융기관들로 채권금융기관협의회(이하 협의회)를 구성한다.

▶협의회 회의내용=해당기업의 재무구조.수지전망등을 심의하면서 해당기업및 기업주의 재산.주식처분 위임장이나 주식.구상권 포기각서등을 받아둘지를 결정.

▶긴급자금지원=해당기업의 근로자 임금이나 납품업체 어음결제자금등 정상영업에 필요한 긴급자금을 업체별로 주거래은행이 우선 지원한뒤 채권금융기관들의 여신비율에 따라 사후 정산한다.

▶정상화 지원방법=대출 원리금의 유예 또는 감면,단기 고리대출금을 중장기 저리 대출로 전환,대출금의 주식 전환,신규 협조융자등.협조융자는 여신비율에 따라 분담.

▶부실채권 정리절차=협의회가 해당기업의 경영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결정하는 경우 법정관리,은행관리,제3자인수 또는 청산등의 절차를 개시한다.

<사진설명>

경제살리기 은행장회의

전국 35개 은행장들은 18일 오후 전국은행연합회 회의실에서

부실징후기업의 정상화 촉진과 부실채권의 효율적 정리를 위한 금융기관

협약안에 합의 서명했다. 〈김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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