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유기한우단지’ 르포] “자식처럼 키우니 소도 보답하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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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야 잘 잤냐. 배 고푸제(고프지)….”

경남 산청군 차황면 부리에 있는 축산영농조합 ‘유기한우단지’의 공동축사를 찾은 지난해 말, 조합원 이상목(42)씨는 28개월짜리 수컷 한우를 마치 친자식처럼 대했다. 이씨가 소들의 머리를 솔로 긁어 주자 소들은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재롱’까지 떨었다. 공동축사 옆 운동장에서는 소들이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경남 산청군 차황면 유기한우단지 방목장에서 박융근씨(51)가 소를 돌보고 있다. 소들은 경사진 방목장을 오르내리며 자유롭게 운동한다. [산청=송봉근 기자]


이 공동축사는 유럽에서 시작된 ‘동물복지’ 개념이 적용된 곳이다. 소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살다 최상품의 육질을 남기고 가도록 설계했다. 소의 운동량을 최대한 줄여서 몸집만 불려 무게를 나가게 하는 공장식 축사와는 다르다.

너른 부지(1만6528㎡) 위에 지어진 축사(면적 3636㎡)의 천장으로는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축사 옆면은 환풍용 커튼이 오르내리며 실내 공기를 조절한다. 축사 바닥에는 톱밥과 짚을 섞은 깔짚을 두께 30㎝쯤 깔아 푹신하게 했다.

소 한 마리가 차지하는 축사 크기는 30㎡. 농림수산식품부가 정한 가축사육 기준보다 최고 여섯 배쯤 넓다. 소가 먹는 물도 사람의 음용수 검사를 통과한 것이다. 사육일지에는 사료·질병치료 내용이 꼼꼼히 적혀 있다. 항생제나 성장촉진제 투여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이문혁(56) 영농조합장은 “쾌적한 환경에서 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소들은 잘 자라고 병도 안 걸린다”며 “정성을 쏟은 만큼 은혜에 보답하는 게 소”라고 말했다.

◆친환경 농업과 축산업의 결합=유기한우단지라는 이름은 공동축사 주변으로 12농가가 같은 형태의 축사 52채를 지어 184마리의 소들을 기르며 모여 있어 붙게 됐다. 조합원 박융근(51)씨의 축사에 딸린 소나무숲 방목장에서는 소들이 경사진 야산을 오르내리며 운동한다. 농가에서 18개월 기른 뒤 공동축사로 옮겨져 12개월간 특별 사육법으로 살을 찌워 30개월이면 시장에 출하된다.

소 분뇨는 발효시켜 퇴비로 만든 뒤 축사 앞 논에 들어간다. 이 퇴비에다 농약과 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쌀은 ‘메뚜기 쌀’ 브랜드로 인기다. 황매산 자락 해발 340m 지점에 있는 차황면은 청정지역으로 400㏊에서 친환경농사를 짓고 있다.

수확한 뒤의 짚은 하루 50t 생산 규모의 사료공장(1650㎡)으로 옮겨 배합사료로 만든다. 소들에게 농약과 비료에 오염되지 않은 사료를 먹이는 것이다. 이처럼 차황면 일대에서는 소 분뇨→논, 볏짚→소 사료로 순환한다. 이 덕택에 한우단지에서 자란 소들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유기축산 인증을 받고 있다. 내년엔 600여 마리에 이를 것으로 본다.

올해 3월 첫 출하를 앞둔 소들은 도축장에 갈 때도 샤워를 시킨 뒤 박스형 전용 수송차량에 탄다. 스트레스를 덜 주기 위해서다. 무게 700㎏짜리 한 마리 가격은 1000만원대로 기대한다. 일반 한우 평균 500여만원의 두 배쯤 된다.

◆유기축산으로 돌파구=이문혁 조합장은 2004년 6월 산청군과 함께 축산농가 220농가(620마리)를 대상으로 유기축산의 중요성을 설득하고 다녔다. 당시는 미국에서 2003년 말 광우병 파동이 벌어져 안전한 소고기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컸을 때였다. 이 조합장은 대학에서 축산학을 공부한 뒤 곧바로 고향으로 내려와 1981년부터 한우를 기르고 있었다. 그는 친환경 축산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조합장은 “항생제를 아무리 투여해도 소들은 죽어 나갔다”며 “소도 사람과 똑같이 주거환경과 먹거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패를 겪으면서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후 농민들이 조합을 결성하고 자리를 잡아가자 2007년 농식품부와 경남도·산청군은 100억원을 투입해 축사 개량, 사료공장, 퇴비공장 등 기반시설을 지원했다. 진주산업대 오석두(축산학과) 교수는 “축산업과 쌀농사, 논을 살리고 소비자에게도 안전한 고기를 제공하는 새로운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산청=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유기축산=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항생제 여부·시설·사료·수질·사육방법을 심사해 매년 인증해 준다. 2007년 전국에서 15농가가 첫 인증을 받았다. 13곳이 산청군 차황면에 모여 유기한우단지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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