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고속부실 高速鐵 처방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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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 건설은 끝끝내'문제아'일 수밖에 없는가.성수대교 붕괴로 된서리를 맞았던 건설업계가 이번에는 고속철도 폭풍에 휘말렸다.

미국 WJE사의'경부고속철도 시험선구간 70% 부실시공'이라는 판정을 정부가 공식으로 발표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당연히 책임소재에 대한 다툼이 잇따르게 되고,명예회복을 위한 설전(舌戰)이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오래전이라면 모를까 성수대교 붕괴 이후에 외국인 감리를 두고,한두업체도 아닌 참여업체 모두가 부실시공을 했다니 더욱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대책이다.공단은 당연한듯'외국 기술자에 의한 설계점검.책임감리.안전진단 방침'을 내비치고 있다.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정부가 앞장서 우리 업체는 더더욱 못 믿겠다고 대내외에 공표하는 꼴이고,나아가 건설과소비.외화낭비를 부추기는 처방이기 때문이다.

우선 왜 이처럼 기를 쓰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고속철도를 놓아야 하는지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공단은 지금 외국인을 아무리 데려와도 공사를 더 잘할 조직도 아니다.공기연장.품질저하.소요예산에 크게 신경쓸 이유가 없는'훈수꾼'에 불과

한 외국인들에게 계속 두세배 비용을 들일 필요가 정말 있을까.

이 참에 한번 쉬어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처방이 아닐까.

능력도 안되는 역사(役事)를 무리하게 시작한 잘못을 정부가 이번처럼 아주 속시원히 인정하고,다시 한번 공기(工期).돈을 재점검해보는 것이다.그러면서 우리 기술력을 다시 한번 면밀히 평가해보자.이번처럼 말단 기능공의 장인(匠人)정신

이 문제라면 설계가 아무리 우수해도 소용없는 일이다.또 50%에 공사를 따는 공사입찰제도로 WJE가 요구하는 완벽한 시공품질을 기대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현장의 시공회사들은 지금 도면이 없어 공사를 못하며 관리비만 축내고 있는데 외국인 감리자는 꼬박꼬박 감리비를 타가는 시스템은 분명 문제다.

공단의 역할을 재정립해 조직.추진체계를 바꾸는 일도 중요하다.일이 끝나면 해체될 한시적 조직으로 수십조원의 공사를 추진하는 방식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비전이 없는데 헌신적으로 일할 사람이 있겠는가.조직을 기업형 단순조직으로 바꾸는게 현명하다.현재 건설에 참여한 사람들이 나중에 모두 운영요원이 될 수 있는 영속조직화도 필요하다.이를 위해서는 사람을 더 충원하기보다 아웃소싱을 확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제 고속철도는 전체적인 공정을 다시 짜야 한다.당초 잘못 꿴 첫 단추를 이번에는 완전히 풀어 원점에서 시작하겠다는 마음가짐이 당국자에게 필요할듯 싶다. <음성직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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