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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약은 무슨! … 이 아파도 참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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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 상도동에 사는 이모(67)씨는 요즘 이가 쑤셔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씨의 오른쪽 잇몸 주변은 퉁퉁 부어 있다. 얼마 전 치료를 그만뒀기 때문이다.

이씨는 나이가 들면서 이가 썩어 현재는 어금니 네 개와 앞니 세 개, 송곳니 한 개만 남아 있다. 많이 썩은 이는 빼서 임플란트를 하고 일부 이는 덧씌워 틀니를 고정해야 하지만 돈이 많이 들어 포기했다. 이 때문에 기존 이와 틀니 사이에 이물질이 들어가 이가 자꾸 썩어 들어가고 있다.

아파도 참는다. 큰 병에 걸린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찾지만 근육통·관절염이나 치과질환 같은 당장 급하지 않는 병은 참고 지낸다. 독감 예방주사를 안 맞고 건강검진은 건너뛴다. 방학 특수를 누려 왔던 성형외과·피부과·안과 등에는 찬바람이 분다. 보약은 꿈도 못 꾼다. 최악의 불황이 만든 풍속도다.

윤모(35)씨는 2008년 초 출산 뒤 치질이 생겼다. 병원에서 수술을 권했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연말 보너스를 받을 때까지 미뤄 왔다. 검사비와 입원비에 50만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너스가 안 나오면서 수술을 미뤘다. 윤씨는 “고통이 심해지기 전까지는 미뤄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8년 1~11월 치질 치료를 받은 환자는 49만2121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7%(3만7028명) 감소했다.

중산층이 가장 움츠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3분기 전체 도시근로자 가운데 소득 수준 40~60%인 가구의 보건의료비는 11만1935원으로 2007년 동기(12만2300원)보다 8.5% 줄었다. 하위층은 일부 줄었고 상위층은 되레 늘었다.

백신도 남아돈다. 10년 전 개원한 서울 강서구 A소아과 원장은 “지난해에는 인플루엔자 백신이 모자랐는데 접종하는 사람이 줄어 백신이 남을 정도”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가 가장 많이 줄었다. 서울 한 대학병원 검진센터는 2008년 초만 해도 하루에 60~65명이 건강검진을 받았지만 지금은 35~40명으로 줄었다. 서울 강북구의 한 치과의사는 “임플란트나 치열 교정 환자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예비 대학생이 몰려 겨울방학 특수를 누렸던 성형외과·피부과·안과는 더 썰렁하다. 대부분의 성형외과가 20~30%씩 매출이 감소했으며 반 토막 난 곳도 많다. 이 때문에 B성형외과는 300만원 하는 코 성형 비용을 200만원으로 내렸다. 일부 병원은 30~40% 내렸고 두 명이 가면 한 명 값에 가능한 ‘1+1 이벤트’도 등장했다.

한의원의 침 진료는 건강보험이 돼 20~30%가량 줄었지만 보험이 안 되는 보약·비만 환자는 70~80% 줄었다. 서울 동교동 비피노한의원 이상봉 원장은 “가벼운 증상은 참고 아파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환자만 병원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을 덜 가다 보니 대형병원 병실 잡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지난해 이맘때 내과에 입원하려면 보름가량 기다렸으나 요즘엔 일주일이면 가능하다.

황세희·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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