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을 두텁게] “소액신용대출로 희망의 씨 뿌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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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준씨가 29일 오전 근무 중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떡카페 수밀원에서 자신이 만든 떡을 보여주고 있다. 이씨는 내년 2월 자신의 가게를 창업할 계획이다. [조문규 기자]

예비 창업자 이창준(32)씨는 올겨울이 별로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빈털터리 청년실업자였던 그가 내년 2월이면 어엿한 ‘떡카페’ 사장님이 된다. 떡카페는 일반 떡도 판매하지만 울긋불긋 예쁘게 쪄낸 떡을 조각 케이크처럼 잘라 커피·녹차와 함께 서비스하는 신개념 떡집이다.

이씨는 최근 서울 강남구에서 5000만원의 장사 밑천을 대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강남구가 올 8월 민간 단체인 사회연대은행과 손잡고 시작한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credit)’ 사업의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것이다. 이 돈은 연 2%의 금리로 5년 동안 나눠 갚으면 된다.

이씨는 “떡기술이 적성에도 맞고, 대학 때 전공을 살리면 남보다 예쁜 떡을 만들 자신이 있다”며 “장사가 잘되면 미국이나 캐나다에도 분점을 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이씨에게 그동안 사회는 참으로 매정한 존재였다. 졸업 후 광고회사에서 일자리를 얻었으나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초봉은 월 45만원에 불과했다. 야근과 휴일근무도 밥 먹듯이 해야 했다. 회사를 옮겨도 처우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이씨는 “위에서 시키는 일만 죽어라 하고 정규직으로 올라갈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며 “회사에서 받는 월급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결국 디자인 일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그는 2006년 11월 우연한 기회에 강남지역자활센터의 떡제조사업단에 들어가게 됐다. 이씨는 자활기관에서 일을 해야만 생계비를 지원받는 조건부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이씨는 이곳에서 죽기살기로 일을 배웠다. “급여는 월 75만원에 불과했지만 열심히 기술을 익히면 창업의 기회가 생길 것이란 희망” 때문이었다. 출근시간은 오전 6시지만 이씨는 매일 오전 5시30분까지 출근해 작업장을 정리했다. 열쇠관리를 자청해 가정 먼저 와서 문을 열고, 가장 늦게 퇴근해 문을 닫았다. 쉬는 날이면 다른 떡집을 무작정 찾아가 “돈은 필요 없으니 일만 시켜 달라”고 졸랐다. 현재 강남자활센터가 강남구 도곡동에서 운영 중인 떡카페 수밀원에서 고객 서비스 요령을 익히며 창업 준비를 하고 있다.

이씨는 “내년 2월이면 인테리어까지 마치고 가게 문을 열 수 있다”며 “설 대목을 놓치는 게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50㎡ 정도의 점포를 얻어 가래떡·시루떡·송편 등을 찌는 기계를 갖추고, 가게 입구에는 빵집처럼 떡 판매대와 탁자·의자를 배치할 계획이다. 그는 “월세가 싸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점포를 찾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며 돌아다니고 있다”며 “송파구나 경기도 성남시 쪽을 주로 알아 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강남구와 사회연대은행은 지금까지 이씨를 포함한 10명에게 1인당 1000만~5000만원씩 모두 3억4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중 이준용(45)씨가 이달 초 과일가게를 여는 등 2명이 창업에 성공했다. 강남구 주민이거나 강남에서 창업을 하려는 사람이 지원대상이다. 이용만 강남구 기업지원팀장은 “현재까지 18억원의 기금을 모았다”며 “내년 2월 추가로 지원 신청을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와 서울시도 내년에 각각 130억원, 8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주정완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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