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차용증 15억’ 정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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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15억원을 받았다면 이 돈의 정체는 무엇일까.

검찰은 우선 이 돈이 실제로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는지를 확인할 계획이다. 국세청이 압수한 차용증에 적힌 내용이 사실인지를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차용증에는 작성 날짜, 이자 지급 방법, 변제일 등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한다. 박 회장은 검찰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은 차용증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측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지 않았다. 정치적 파장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검찰 조사에서 돈이 실제로 건네진 것으로 확인될 경우 수사팀은 ‘차용’이 사실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정말 빌려준 것인지, 아니면 돌려받을 계획이나 약속 없이 제공한 것인지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빌린 돈이라면 법적으로 문제 삼을 게 별로 없다. 사인 간의 금전 거래 영역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돌려받을 생각 없이 줬고, 차용증이 법적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형식적 수단으로 주고받은 것이라면 사안은 복잡해진다. 당장 증여세 납부의 문제가 생긴다. 거액을 증여받았으면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돈에 대가성이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형법(131조)은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한 청탁을 받아 부정한 행위를 하고 그 직책을 벗어난 뒤에 그 대가로 돈을 받은 경우 뇌물수수로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사후수뢰죄’다. 박 회장은 2006년 농협의 자회사 휴켐스를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농협중앙회 정대근 회장에게 20억원의 뇌물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27홀 규모의 골프장인 정산컨트리클럽의 문을 열고 경남 진해와 김해에서의 부동산 개발 사업에 뛰어드는 등 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직 재임 기간 동안 각종 이권사업을 벌였다. 만약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박 회장이 모종의 청탁을 했고, 노 전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15억원은 대가성 있는 돈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농촌 환경 개선 사업 등에 쓸 목적으로 돈을 빌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돈의 사용처 역시 검찰이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돈이 노 전 대통령의 측근에게 유입됐거나 정치자금으로 쓰였다면 증여 문제나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 등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검찰은 매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신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박 회장과의 금전 거래 문제에 대해 “진위를 알 수 없는 차용증이 하나 나왔다는 것 말고는 아직 아무것도 확인된 게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내부적으로는 이 돈의 출처와 사용처에 대한 조사 계획을 세워 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서면조사든 소환조사든 조사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은 형사소추에서 면제되기 때문에 소환이 불가능하지만 전직 대통령은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기업인과 돈 거래를 한 것은 법률적인 문제를 떠나 도덕적으로 흠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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