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3共시절 박종규씨 외압대출 30년만에 회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70년대 후반,외환은행이 정치적 외압에 의해 재일교포 사업가에게 해준 부실대출을 30년만에 이자까지 포함해 회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난 2월26일 일본 도쿄(東京)최고재판부는 외환은행이 정건영(鄭建永.74.동아상호기업주식회사 대표)씨를 상대로 낸 대출금 2천9백억원(4백억엔)청구소송 결심공판에서 원고 승소 확정판결을 내렸다.문제의 대출은 당시에도 이른바'정인

숙(鄭仁淑)대출'로 의혹이 제기됐던 돈.이 돈은 정인숙이 일본에 체류할때 鄭씨가 돌봐주는 조건으로 박종규(朴鐘圭)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이 주선한 대출금이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외환은행은 지난 68년7월부터 9년동안 鄭씨에게 원금만 1백57억엔에 달하는 여신을 제공했으며,이를 회수하기 위해 지난 83년3월 鄭씨를 상대로 대여금 소송을 제기했다.鄭씨는 마치이 히사유키(町井久之)로 통하는 재일교포 사업가로

일본 야쿠자 대부 고타마 요시오(兒玉擧夫)의 오른팔로 알려져 있으며,朴실장등 5.16세력과도 두터운 교분을 유지했던 인물.

사건은 3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외환은행 기록에 나타나는 鄭씨와의 첫 거래는 68년 7월.당시 후쿠시마(福島)에서 토지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던 鄭씨는 한때는 잘 나가는 교포사업가였으나,1차오일 쇼크 이후 기울기 시작해 이때부터

외환은행 빚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외환은행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물려들어갔다.

당시 도쿄지점 주재 이사로 일했던 김봉은(金奉殷)현 장기신용은행 고문은 전화인터뷰를 통해“한보사건보다 더한 권력형 부실대출로서 언젠가는 다 밝혀져야 할 사건”이라고 말했다.

외환은행이 막대한 부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처럼 외화지원을 계속했던 속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금융계의 정설은 제3공화국 시대의 전형적인'외압대출'이라는 것이다.그 배후인물로는 박종규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이 지목돼 왔다.

그런데 이 대출은 朴씨가 鄭씨에게 당시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정인숙을 돌봐주는 대가로 알선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정인숙의 출산(68년6월)직후,세간의 잡음을 우려한 朴씨가 정인숙을 미국.일본등에 머무르게 했는데 그때 일본에서

朴씨와 가장 친한 인물이 鄭씨였다는 것이다.당시 도쿄지점 사정에 정통한 한 금융계 관계자도 “정인숙이 鄭씨와 접촉했던 것으로 알고있다”고 밝히고 있다.

외환은행 도쿄지점이 돈을 내준 것은 국내의 외압뿐 아니라 鄭씨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전총리등 일본 자민당 고위 관계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믿고 대출해준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鄭씨에 대한 외환은행의 무조건

적 지원은 김용환(金龍煥)현 자민련 국회의원이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끝장이 났다.일본 사회당등 야당이'鄭씨의 재산이 朴대통령 소유'라는 식의 의정 발언을 해 정치 문제화될 조짐을 보이자 더 이상 지원을 계속할 수 없었던 것.

鄭씨측의 거센 반격이 잇따랐으나 지원뿐 아니라 부도처리 역시 통치권 차원의 결정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결국 외환은행은 77년 鄭씨 소유 빌딩과 땅에 근저당을 설정하고 부도처리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채권 회수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鄭씨가 조총련 세력을 힘으로 제압하는데 앞장섰던 반공인사로 일부에서는'애국자'로 알려진 인물이었고,육군사관학교 체육관 건립에 선뜻 거금을 희사하는등 파격적 지원으로 지지세력이 상당했다는 것이

걸림돌이 됐다.또한“대출금 일부가 당시 한국 정치인들의 정치자금으로 국내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금융계에서 나돌았다.

어떻게든 대출금을 챙기고자 鄭씨를 찾은 외환은행 관계자들은 鄭씨의 부하로부터“보스의 심기를 언짢게 만든다면 레미콘에 갈아버리겠다”는 협박을 듣기도 했다(鄭씨는 80년대부터 심장이상으로 보조모터를 부착한 인공심장을 달고 있다).97

년 2월말 현재 집계로 외환은행이 받을 돈은 이자를 합쳐 모두 4백억엔.록본기 부동산등 근저당 설정액이 모두 2백8억5천만엔이므로 일단 법적으로 그 액수만큼 되찾을 수 있다.부동산값 하락으로 담보부동산이 1백50억엔으로 떨어진 것이

문제다.어차피 이 부실여신은 이미 오래전에 대손처리됐기 때문에 담보부동산을 현재가격대로 처분한다해도 1천1백억원(1백50억엔)에 가까운 특별이익이 생긴다.

한때 은행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던 3공시대 최악의 관치금융 유산이 세월이 흐르면서 한보에 물려 고전하고 있는 외환은행의 황금알로 변한 것이다. 〈박장희 기자〉

[ 정인숙사건이란 ]

70년 3월 서울 강변로에서 26세의 정인숙씨가 오빠 정종욱(鄭宗旭)씨에게 피살당한 사건.미모의 鄭씨는 정일권(丁一權)총리등 최고권력층과 염문을 뿌린 것으로 알려져,정치적 살인사건이라는 추측이 무성했다.오빠 鄭씨는 19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출옥,자신은 정치적 희생양임을 주장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