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쿼터폐지·증산 고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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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의 이목이 오는 3일 레바논에서 열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 쏠리고 있다. 이 회의가 최근 배럴당 40달러를 넘나들고 있는 국제 유가의 향방에 중요한 가늠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유가는 최근 사흘간 약 6% 떨어지면서 큰 고비는 넘은 것 같다는 전망을 낳았으나 지난달 29일 사우디아라비아 동부의 석유도시 쿠바르에서 발생한 인질극으로 인해 다시 오름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이번 인질사태는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불안감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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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의 영향력 시험대=국제 사회가 고유가에 비명을 지르고, 선진 7개국(G7)이 미국의 뜻을 반영해 OPEC에 증산을 촉구하자 사우디가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현재 사우디의 하루 생산량은 910만배럴인데 이를 1050만배럴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사우디가 한걸음 더 나아가 OPEC 회원국들의 산유량 제한(쿼터제)을 일시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란.카타르.베네수엘라 등 다른 회원국들이 쿼터 폐지에 반발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현재의 OPEC 유가 목표 가격 범위(22~28달러)를 높이는 작업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이 목표 가격은 유가가 20달러대에 있을 때 정한 것으로 40달러를 오르내리는 지금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타르는 목표 가격의 하한선을 28달러로, 이란은 30달러로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유가 안정될까=이번 인질사건과 관련, 사우디는 석유시설 피해는 전혀 없다며 진화에 나섰으나 전문가들은 유가 상승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유가 상승세의 큰 이유가 이라크 및 중동 지역의 불안정한 역학구조에 기인한 것인 만큼 새로운 불안요인이 유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유가가 조만간 42달러에 도달한 후 추가 테러가 발생할 경우 50달러선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도 샌포드 번스타인증권의 애널리스트 닐 맥마흔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에서 석유 생산이 차질을 빚을 경우 1979년 2차 오일쇼크를 야기한 이란 혁명에 비견될 만큼 석유 수급에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전했다.

사우디가 증산한다 해도 실제로 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어 고유가가 쉽게 잡히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번 OPEC 회의에서 산유량을 하루 200만배럴 늘린다고 해도 이는 그동안 생산해 온 쿼터 초과분을 추인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석유 거래회사인 에너지머천트의 에드 실리에르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증산 계획을 실천할 경우 유가는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씨티그룹의 석유산업 애널리스트인 더그 레게이트도 "미국의 재고 수준을 감안할 때 유가는 30달러선으로 낮아지는 것이 정상"이라고 거들었다.

◇러시아를 믿는다=알렉세이 쿠드린 러시아 재무장관은 지난달 29일 "러시아는 고유가를 활용하기 위해 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OPEC 멤버가 아닌 러시아는 현재 사우디에 조금 못 미치는 하루 900만배럴의 원유를 캐내고 있다.

미국은 OPEC가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을 경우 러시아를 비롯한 비(非)OPEC 산유국들을 동원해 유가 안정을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멕시코와 나이지리아 등이 여기에 보조를 맞춰 증산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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