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정치] 복면 착용 금지법 vs 마스크 처벌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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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복면과 마스크.

형상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얼굴을 가리는 걸 말하니까요. 어감은 그러나 전혀 다릅니다. 복면은 종종 좋지 않은 말과 호응합니다. ‘복면 강도’가 그 예입니다. 사전엔 “착하디착한 그도 복면하니 전혀 다른 악한 사람으로 보였다”란 예문이 보이네요. 왠지 음험합니다.

마스크는 좀 다릅니다. 병균이나 먼지를 막기 위한 것이거나 운동선수들이 안면 보호를 위해 착용하는 보호장구를 가리킵니다. 누군가에겐 필요한 물품이란 의미를 내포합니다. 긍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마스크 처벌법’과 ‘복면 착용 금지법’. 두 법안 중 어느 쪽이 필요한 법안인 듯 여겨지나요?

두 법안은 실은 두 법안이 아닙니다. 하나의 법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집회 때 복면 또는 마스크를 쓰는 걸 금지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 말입니다.

민주당은 이를 마스크 처벌 법안이라고 규정, 공세를 펴고 있습니다. “독감에 걸리신 분들 외출을 삼가야 합니다. 집회 현장에서 과도하게 풍선껌을 불어 안면을 가리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솜사탕 등 안면을 가리는 군것질거리도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최재성 민주당 대변인의 논평입니다.

터무니없는 과잉 입법이란 느낌을 주지 않나요? 누구든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감도 줍니다. 국회에서 절대 통과되어선 안 될 법안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시위하려면 당당하게 시위하라. 복면 뒤에 숨지 말라”고 맞섭니다. ‘복면 착용자=비겁자’란 메시지입니다. 또 ‘복면→범죄’란 연상작용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로 드는 게 유색인종에 대한 테러를 일삼았던 백인우월주의 집단 KKK입니다. 고깔 모양의 흰 복면으로 악명 높습니다. 한나라당은 내심 “복면을 쓰지 않을 때 이들은 파리 한 마리 쉽게 죽이지 못한 시민이었다”는 역사적 사실까지 전달하고 싶어 합니다.

마스크 처벌 법안으로 불릴 때와 달리 복면 착용 금지법은 필요한 법안처럼 여겨지진 않나요? 복면 착용을 금지하면 과격 시위가 줄어들고, 혹 과격 시위가 있더라도 검거율이 높아질 듯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세밑 국회에서 여야는 치열한 법안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100여 개 안팎의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호언하고, 민주당은 실력 저지하겠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이번 승부의 향배를 가르는 건 결국 민심입니다. 민심을 끌어오기 위해 ‘마스크 처벌법’이니 ‘복면 착용 금지법’이니 작명(作名)에 골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순·명료화된 메시지를 끊임없이 반복하기도 합니다. ‘날치기’(민주당), ‘다수결에 의한 의법 처리’(한나라당)가 좋은 예입니다.

바로 선전전입니다. “끊임없이 반복하면 네모가 원이라고 믿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나치 정권의 괴벨스)는 말도 있습니다.

경제위기로 엄중한 시기입니다. 정치권의 화려한 말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려는 국민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고정애·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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