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큰 돈’ 63만원 … 인천 쪽방촌 주민·노숙인·무료급식노인 390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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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인천시 만석동의 신모(71) 할머니는 쪽방에서 치매에 걸린 남편과 산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신 할머니는 한 달에 30만원가량을 정부에서 지원받는다. 하지만 남편을 수발하고 생활비를 쓰면 이 돈도 빠듯하다. 그래서 사회복지단체에서 운영하는 공동작업장에서 종이 쇼핑백을 만든다. 하루 종일 해 봤자 한 달에 10만원 벌기가 쉽지 않다. 신 할머니는 며칠 전 복지단체에서 이웃 돕기 성금을 모은다는 말을 듣고 1만원을 선뜻 내놨다. 신 할머니가 3일간 일해야 손에 쥘 수 있는 돈이다. 쇼핑백 한 개를 만들어 버는 돈은 40원. 쇼핑백 250개를 만들어야 하는 돈이다. 신 할머니는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쪽방촌 주민, 노숙인, 노인 무료급식소 노인 등은 주위의 도움을 받아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눈을 돌렸다. 인천시 북성·계산동 등지에 사는 저소득층 390명이 주인공이다.

허리가 아픈 표모(62·만석동)씨는 다른 일을 못한다. 그래서 그는 폐지를 주워 생활을 한다. 이 돈으로 쪽방 월세 10만원을 낸다. 자녀가 있지만 도움을 받지 못한다. 생활비가 부족해 끼니는 거의 라면으로 때운다. 그는 건강보험료를 연체할 정도로 어렵게 살지만 이번에 1000원을 기부금으로 냈다. 일부 쪽방촌 주민들은 굴을 까서 번 동전을 모았다. 신 할머니처럼 쇼핑백을 만들어 번 돈을 기부한 할머니도 여럿이다.

이달 초부터 24일까지 이렇게 모은 돈은 63만원. 이 돈은 26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한 사람이 낸 돈은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수백만원보다 소중하다. 며칠간 꼬박 일해야 이 돈을 벌 수 있다.

이들이 이웃을 돕기로 의견을 모은 것은 이달 초. 사회복지법인 ‘인천 내일을 여는 집’에서 운영하는 쪽방 상담소, 노숙인 쉼터, 노인 무료급식소의 간사와 주민들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보내온 쌀과 김치를 나누기 위해 모였다.

“우리는 그동안 도움만 받아왔습니다. 경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도 뭔가 도움을 주는 일을 하면 어떨까요.”

누군가 갑작스레 이런 제의를 했다. 잠시 망설이는 분위기였다. ‘우리가 남을 도울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그것도 잠시, 누가 “우리도 할 수 있다”고 하자 모두 찬성했다. 인천시 만석·북성·인현동 쪽방 상담소, 계산동에 있는 노숙인 쉼터와 노인 무료급식소에 모금함을 설치했다. 예상 외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최지영 내일을 여는 집 간사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라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며 “모금액도 10만원가량으로 예상했지만 훨씬 많이 모였다”고 말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이번 모금에 참여한 인천의 쪽방 주민과 노숙인·노인을 ‘희망 2009 나눔 캠페인-62일의 나눔 릴레이’의 26호 행복 나누미로 선정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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