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촨 지진 때 아이 잃은 학부모들 국가에 손배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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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5월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국가를 상대로 집단으로 배상 소송을 냈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에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래서 국제적인 관심사가 됐다.

NYT는 “지진 당시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 숨진 학생들의 부모 가운데 57명이 지난 1일 쓰촨성 더양(德陽)인민법원에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했다”고 전했다.

소송에 나선 한 학부모는 “이 소송에서 우리가 승소하면 아이들의 죽음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두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들은 9월 마쭝진(馬宗晋) 국가원촨(汶川)지진전문가위원회 주임이 “중국 경제 성장기에 급조된 학교의 부실 공사가 쓰촨 대지진 발생 당시 1만여 명의 아이를 죽음으로 몰았다”고 발표한 사실을 들어 자녀들의 사망 원인을 인재(人災)라고 규정했다. 당시 마 주임은 “학교 건물에 부적합한 자재가 쓰였으며 철근 이음새가 부실해 학교 건물이 쉽게 붕괴됐다”고 밝혔다.

부모들은 이를 근거로 건축·교육 공무원 등이 학교 건축 예산을 유용해 부실 공사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건축업자와 학교뿐 아니라 예산 집행을 감독하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내게 된 것이다.

학교 붕괴는 지진 발생 후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이슈 중 하나였다. 지진 당시 학교와 기숙사 건물 약 7000여 곳이 붕괴돼 1만여 명의 아이들이 사망했다. 부모들은 정부를 상대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정부는 사안의 민감성과 폭발력을 의식해 철저하게 여론을 관리하면서 부모들을 상대로 피해 보상 협상을 벌여 왔다.

부모들은 국가 책임을 강조하면서 1만9000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소송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학생당 8800달러의 보상금과 함께 별도로 수천 달러를 연금 형식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고수했다. 결국 협상이 결렬되자 부모들이 집단소송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이어서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NYT는 “부모들에게 소송을 취하하라는 교육 당국의 압력과 회유가 있었고, 법원 관계자도 소송인들을 만나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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