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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인 1세 미국 시장 강석희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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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조영남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정치를 더러운 게임이라고 하잖아요.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서로 짓밟아야 하고, 싸워야 하고 한다는데-. 경험해 보니 미국은 어때요?
여기도 선거에서 싸움은 굉장히 심합니다. 더구나 이쪽 동네는 공화당이 우세한 지역이어서 모든 다른 직종, 그러니까 연방 하원, 주 상·하원, 카운티 슈퍼바이저 등이 완전히 공화당 일색이거든요. 유일하게 어바인 시만 민주당이 다수예요. 공화당의 눈엣가시인 셈이죠. 그런데도 우리는 일을 잘해서 주민들이 계속적으로 지지하는 것이고요. 이것이 저는 상당히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해요. 그 동안 제가 한국정치를 보면서 생각했던 것인데, 한국에는 공천문화가 뿌리깊어 공천의 벽을 넘지 못하면 출마조차 못하잖아요. 이것을 빨리 허물어 자유경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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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한국에서는 멀쩡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국회의원이 되고, 또 그러다 감옥 가고 그러잖아. 그러니까 정치인이 다 더럽게 보이죠. 그런데 미국에서도 정치판에는 더러운 것이 있지 않겠어요? 가령 백인 공화당 상대가 강 시장을 비방한다거나 하는…. 그런 것 중 가장 센 것이 뭐였어요?

“정치는 타이밍”

강석희 대부분 인종적인 거였죠. 9·11사태 이후 미국에서 가장 예민한 아킬레스건이 테러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지지한다는 식의 텔레비전 광고를 상대 후보 측에서 때린 적이 있죠.

조영남 정말 테러를 지지한 적이 있어요?

강석희 전혀 없죠.

조영남 그럼, 그런 말이 왜 나온 거예요?

강석희 어바인에는 중국·일본·인도·필리핀·중동 등 수많은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시의원으로서 이런 커뮤니티 행사에 공평하게 참여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참가했던 이슬람 이벤트에서 감사장을 받으면서 했던 말이 갑자기 선거운동에서 제가 이슬람 커뮤니티를 지지한다는 식으로 포장돼 공격 대상이 된 것이죠. 한마디로 트집잡기인데, 이런 식으로 해서 여러 가지 네거티브 전략으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조영남 강 시장은 네거티브 전략 안 썼어요?

강석희 절대 안 했습니다.

조영남 조금 전에 제가 묻지도 않았는데, 한국정치에서 경선문제를 언급하셨는데, 한국정치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한국정치의 가장 큰 결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석희 제가 한국에서는 정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굉장히 외람된 말이지만, 피상적으로 비교해보면 미국정치는 모든 것이 열려 있어요. 예를 들어 후원금만 해도 최대금액에 한계를 두고 그에 대해서는 굉장히 철저히 감시합니다. 벌칙도 엄격하고요. 하지만 법이 정한 한도 내에서는 어떤 것을 해도 상관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저만 해도 시장에 출마하기 1년 반 전부터 준비했거든요.

조영남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면 사전선거운동법에 걸려 큰일나지.

강석희 미국은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언제 선거운동을 시작하든 상관없죠. 또 미국에서는 모든 지방선거가 자유경선입니다. 지역에서는 아무나 본선거에 입후보해서 당선될 수 있죠. 그러나 주나 연방으로 올라가면 예비선거를 거쳐야 합니다.

조영남 쉽게 말하면 당 우두머리가 “네가 3억 원 내면 누구 못 나오게 해주겠다” 하는 것이 전혀 없겠군요?

강석희 전혀 없죠.

조영남 지금 한국에서는 “너 3억 원 있어? 그럼 무슨 선거에 나와” 뭐 이러고 있거든요.

강석희 미국에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나와서 경선에서 이기는 사람이 후보로 나온다, 이것이 기본적이죠. 거기에 누가 공천을 준다거나 내가 너를 좋아하니 뭘 준다거나 하는 것이 없죠.
이런 것은 있어요. 민주당이면 민주당원들끼리 후보를 검토해 카운티 위원회에서 투표합니다. 그런 다음 민주당 당원 성명으로 어느 후보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죠. 그럼, 그 후보가 선거운동을 하면서 그 성명을 활용하기는 하죠. 민주당의 지지를 받는 후보다 이런 식으로요. 공화당도 마찬가지고요. 한국에서는 보스가 선호하는 후보를 지명하지 않습니까? 그에 비해 미국은 자유경선으로 한다는 것이 큰 차이죠.

조영남 그 동안 한국에서 강력했던 속설이 ‘미국사람들은 결코 흑인이 대통령이 되도록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거였거든요. 백인 청교도 국가인 미국에서 흑인이 대통령이 되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이런 속설을 믿던 한국사람들은 오바마를 그냥 한번 도전해 보는 정도로만 보다 막판에 깜짝 놀랐는데…. 미국사회에도 그런 속설이 있었나요? 분위기가 어땠어요?

강석희 미국도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죠.

조영남 여기도 그런 말이 있어요?

강석희 그럼요. 본선에서는 미국인들이 결코 흑인을 찍지 않을 테니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가 승리하게 놔두라는 것이 지배적 논리였어요.

조영남 이쪽(민주당)에서도 방심은 못 했겠네요?

강석희 그런데 정치라는 것은 ‘타이밍’입니다. ‘타이밍’.

조영남 네?

강석희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나고 그 다음주에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렸거든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페일린을 부통령 후보로 채택하면서 갑자기 매케인의 인기가 팍 올라갔어요. 그랬는데 그 후 갑자기 미국경제가 완전히 곤두박질쳤죠.

조영남 여기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강석희 네. 이것이 선거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스핀’이었습니다. 우리는 ‘스핀’이라는 말을 쓰는데….

조영남 스핀? 스핀을 한국말로 하면 뭐가 되죠?

강석희 흠… ‘소용돌이’쯤 되려나? 탁 돌려주는…. 그러니까 급변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죠. 미국의 여론을 회오리바람처럼 바꿔버리는…. 미국 역사상 어느 대통령이든 선거가 있는 해에 경제가 나쁘면 집권당 후보는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도 그래서 한 번밖에 못하고 클린턴에게 졌던 것이고요. 이번의 경제위기 역시 오바마가 많은 의구심에도 미국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도자감으로 비치는 데 많은 도움을 줬죠. 어떻게 보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조영남 막말로 재수가 좋았다는 거네?

강석희 재수라기보다… 뭐랄까? 천운이 있었던 거죠.

조영남 똑같은 말이에요.

강석희 그런 것이 있어야 일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 같아요. 더구나 미국 대통령은 세계의 대통령 아녜요.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의 상식을 넘는 비범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조영남 재수가 좋아서 됐다는 것은 약간 부정적 의미가 섞인 표현이잖아요. 어때요? 옆에서 지켜본 오바마의 인품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그냥 운이 좋아서?
오바마는 후보자 때 ‘변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아주 잘 선택했습니다. 부시 행정부가 지난 8년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연방적자를 기록해 지금 아주 심각한 지경에 왔거든요. 또 지난 8년 부시 행정부 동안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최강국이라는 지위가 상당히 내려갔죠. 이럴 때 오바마가 전반적인 변화를 들고 나온 것이 먹혔던 거죠.
이민자 국가인 미국에서 인종적 변화를 말했고, 젊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도록 (분위기를) 몰고 갔어요. 또 오바마의 토론을 보면 알겠지만, 화면에 비친 오바마의 모습이 정말 대통령 같다는 인상을 많이 줬어요.
존 매케인은 정말 노련한 정치인입니다. 그런데 그와 경제·외교·건강 등 여러 정책에 대해 세 번 토론했는데, 그 세 번을 다 오바마가 여유 있게 치러냈죠. 심지어 매케인이 궁지에 몰리게 했고요. 이런 모습에서 상당히 많은 미국인이 ‘오, 저 친구 대통령감이다’ 하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타이밍적으로도 토론 직후 바로 미국경제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오바마가 자연스럽게 그 바람을 탔죠. 미국경제가 무너진 것이 참 안 된 일이지만, 지난 대선만 놓고 보면 국민이 정말 이거 다른 사람을 뽑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해서 결과적으로 오바마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게 해줬죠.

조영남 아~.

강석희 오바마가 연설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는데, 연설을 정말 잘합니다. 청중을 완전히 사로잡아요. 47세밖에 안 된 젊은 사람이지만, 그가 변화를 말하면 먹히죠. 오바마가 자주 하는 말이 “이 나라는 공화당의 나라가 아니다. 그렇다고 민주당의 나라도 아니다. 이 나라는 미합중국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화합을 이루는, 전 미국을 하나로 아우르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메시지죠.
과거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40대 기수로 전 미국인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그런 명연설을 오바마가 많이 했어요. 그 중에서도 훌륭한 것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후보수락연설인데…. 이건 정말 한번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미래지향적이고, 메시지 하나 하나가 미국 국민을 완전히 녹였죠.

조영남 쭉 들어보니, 미국에서는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꼭 갖춰야 할 덕목이 연설인가 봅니다?

강석희 네. 청중한테 어떻게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느냐가 대통령이 되기 위한, 아니 대통령뿐 아니라 모든 정치인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저는 느껴요.

오효림 기자 hy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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