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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인 1세 미국 시장 강석희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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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한인의 미국이민 역사를 넘어 유색인종의 미국 정치입문 역사를 새로 쓰는 사람이 있다. 2008년 11월4일 미 어바인 시장에 당선된 강석희 시장이다. 로스앤젤레스 현지에서 조영남이 강석희 시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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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4일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흑인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 역사상 가장 혁명적 사건으로 꼽힐 만하다. 그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캘리포니아의 보수적인 백인도시인 어바인에서도 이와 비슷한 혁명적 사건이 발생했다. 한인 이민 1세인 강석희 씨가 시장에 당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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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의 어바인 시장 당선은 한인의 미국이민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이자, 유색인종의 이민사 전체를 다시 쓰는 일이기도 했다. 이민 2세대의 미국 주류 정치권 진출은 간혹 있었지만, 강 당선자처럼 이민 1세대가 직접선거를 통해 공직에 선출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2008년 11월15일 밤 12시, 로스앤젤레스의 한 호텔방에서 조영남과 강 당선자가 만났다. 두 사람의 만남은 로스앤젤레스한인회의 모금활동 일환으로 열린 디너쇼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조영남이 디너쇼 후 강 당선자와 ‘우연히’ 접선되면서 이뤄졌다. 선거가 끝난 지 갓 열흘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웬만해서는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조영남도 강 당선자를 만나서는 약간 달랐다. 강 당선자는 미국에서 30년을 산 사람답지 않은 완벽한 언변으로 조영남을 자신의 마력에 빠뜨렸다. 조영남은 연신 강 당선자를 ‘한국의 오바마’라고 치켜세웠다.

조영남 와우~! 전혀 공무원 같지 않네요. 신문에서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젊으신데요? 시장 하기에는 너무 젊다고 안 해요?

강석희 반갑습니다. 그래도 제가 미국 나이로 55세입니다.

활기찬 동양청년

조영남 적은 나이는 아니네.

강석희 하하. 적은 나이는 아니죠. 미국사람들은 동양사람의 나이를 잘 가늠하지 못합니다. 저 같은 경우 최소 10년 정도 어리게 보죠. 다들 42~45세 정도로 봐요.

조영남 한인 1세로는 최초로 미국의 직접선거를 통해 어바인 시장에 당선됐는데, 어바인 시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면 어떤 곳입니까?

강석희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이고 중간에 34개 시가 모인 오렌지카운티가 있는데, 그 34개 시 중 하나입니다. 오렌지카운티 한가운데 위치해서 ‘오렌지카운티의 보석(Jewel of Orange County)’이라고 불리죠.

조영남 와우~! 오렌지카운티의 보석!

강석희 인구는 이제 21만 명을 넘었고, 1971년 시로 승격돼 아직 31살밖에 안 된 신도시입니다. 그럼에도 미국 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계획도시여서 전국적으로 많이 주목받는 도시죠. 주거·산업·상업지역과 학교 등의 구획정리가 잘 돼있습니다.

조영남 그런 것이, 가 보면 정말 가시적으로 보입니까?

강석희 그럼요. 조경도 굉장히 좋아요. 시 전체 면적의 40%가 열린 공간입니다. 어바인의 자랑 중 하나가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라는 것입니다. 미연방수사국(FBI)의 공식 평가입니다. 그것도 4년 연속으로요. 또 한국으로 치면 8학군쯤 되는 학군도 어바인에 있고요.

조영남 미국에도 학군이 있습니까?

강석희 전국적으로 점수도 높고, 좋은 대학에 학생을 많이 보내는 초·중·고등학교들이 어바인에 몰려 있다는 것이죠. 때문에 아시안, 특히 한국 학생들이 어바인으로 많이 유학옵니다.

어바인의 오바마

조영남 말하는 것으로 봐서 오바마를 참 많이 닮은 것 같은데…. 사람들이 그런 말 안 해요?

강석희 어바인 시장에 당선된 뒤, 한국에 보도되면서 그런 말을 듣기는 했어요. 대통령선거와 같은 날 시장선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한국 언론이 저에 대해 ‘어바인의 오바마’라는 표현을 쓴 것 같아요. 분에 넘치는 표현이죠.

조영남 나는 이 인터뷰 기사 제목을 “세상은 변한다. 흑인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고, 한국인 강석희가 어바인 시장이 되듯…”이라고 뽑고 싶어요. 내가 느끼기에 강석희 시장의 연설 톤이 왠지 오바마를 닮은 것 같은데…. 혹시 그런 말 안 들어봤어요?

강석희 과분한 평가죠.(웃음) 미국에서는 공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능력 중 하나가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어려운 단어나 미사여구를 많이 사용해야 연설을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청중들의 몸에 금방 와 닿는 연설이 훌륭한 연설입니다. 오바마의 연설이 바로 그렇죠.
저는 한인 이민 1세대입니다. 제가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미국인만큼은 못하죠. 그래서 제가 최고로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그것이 가장 적은 말을 사용해서 청중에게 강석희라는 사람의 인상을 가장 강하게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할까 많이 연구했죠. 결론은 연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달’ 능력이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 전달 능력을 높이기 위해 또 많은 연구와 연습을 했고요.

조영남 시장에 당선되니 다음날부터 뭐가 다릅디까?

강석희 우선 하도 전화가 많이 와서 잠을 잘 못 잤어요.(웃음) 11월4일 선거가 끝나고, 새벽 2시 반에 발표가 나왔어요. 집에 와서 정리하고 3시 반에 잠들었는데, 사실 선거라는 것이 마지막까지 변수가 있잖아요? 혹시라도 꼭 받아야 할 전화가 있을까 싶어 전화기를 손에 쥐고 잠들었는데, 새벽 5시부터 당선축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죠. 그 다음에는 라디오·TV 등에서 연락이 왔고요.

조영남 시장이 됐다는 실감을 하기도 전에 완전 혼미한 상태로 갔겠구먼. 하하하….

강석희 네. 다음날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정말 하루 종일 전화만 받은 것 같아요. 한국을 떠난 지 31년이 됐는데, 한국 언론과 방송에서 전화가 오고, 또 대서특필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죠. 그날 제가 받은 전화 중 3분의 1은 한국에서 온 것이었어요. 한국인의 끈끈한 정을 새삼 느꼈죠.

조영남 한인 1세대가 직선 시장이 된 것이 한인 이민 100년사에 처음 있는 일이죠?

강석희 네. 처음이죠. 저처럼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대도시의 직접선거에서 뽑힌 것도 처음이고요. 그런 측면에서 역사적으로도 의의가 있죠. 또 저같은 사람이 어바인 같은 보수적인 백인도시에서 백인을 물리치고 당선된 것도 처음이고요.

조영남 상대가 누구였죠?

강석희 시의원을 12년, 시장을 2년 역임한 베테랑 백인 여성정치인이었죠.

조영남 어바인은 민주당이 들어갈 틈이 없는 공화당 텃밭 아닌가요?

강석희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죠.

조영남 처음 도전할 때 그런 느낌이었어요?

강석희 2008년 1월 저 모르게 캠페인팀에서 처음 여론조사를 했는데, 상대에게 10%나 밀렸다고 하더라고요.

조영남 10%면 그렇게 많이 밀리지 않았네….

강석희 10%면 상당한 차이입니다. 미국 지방선거에서는 굉장히 작은 차이로 결정되거든요. 수백~수천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돼요. 10%면 거의 1만 표 차이죠.

조영남 아~. 민주당이 8년 만에 정권을 잡았는데, 시장만 놓고 보면 이번 선거 결과 민주당 출신 시장과 공화당 출신 시장 중 어디가 더 많습니까?

강석희 지역마다 다른데, 캘리포니아에서는 민주당이 더 많습니다.

조영남 (의외라는 듯) 이쪽 동네가 공화당이 더 많지 않나요?

강석희 남가주는 공화당이 좀 우세하고, 북가주는 민주당이 많이 우세합니다. 오렌지카운티와 샌디에이고카운티를 제외한 로스앤젤레스카운티와 중가주·북가주에서는 민주당이 훨씬 세요.

종로5가에서 보낸 어린 시절

조영남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어느 당 소속이죠?

강석희 공화당이죠. 슈워제네거는 배우로서 자신의 인기를 바탕으로 출마해 민주당 주지사를 한 명 퇴출시켰죠.(웃음) 이번 선거에서 특이점은 어바인이 전통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인 지역이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매케인보다 오바마 표가 17% 더 나왔어요. 어바인 역사상 정말 획기적인 일이죠.

조영남 혁명적이네.

강석희 제가 상대적으로 그 덕을 좀 봤고요. 진보적 표가 제가 시장에 당선되는 데 많이 일조했거든요.

오효림 기자 hy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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