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그들이 있어 세상은 좀 더 따뜻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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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불길을 헤치고 실신한 사람을 밖으로 끌어내다가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조병남(57)씨,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생면부지의 부상자들을 돕다 사망한 이궁열(43) 목사 등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주인공으로 뽑혔다(본지 2008년 12월 16일자 11면).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 살신성인의 의미와 가치를 공부한다.

2001년 10월, 일본 도쿄의 신오쿠보 지하철 역에서 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한국인 유학생 고 이수현씨의 추모비. 타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씨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7년 그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너를 잊지 않을 거야’가 일본에서 제작·개봉되기도 했다. [중앙포토]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을 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산을 넘으려면 아직 한참 가야 하는데 강한 바람 때문에 똑바로 걷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이때 당신의 눈앞에 지쳐 쓰러진 사람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를 외면하고 가던 길을 재촉할 수 있다. 자칫 산에 발이 묶여 자신마저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상황이므로 한 사람이라도 안전한 선택을 한 것이다. 또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그를 도와 가며 함께 가는 방법도 있다.

인도의 성자라 불리는 사두 선다 싱(1889~1929)이 네팔에 가기 위해 히말라야 산맥을 넘을 당시 실제로 이 같은 상황에 처했다. 그와 동행 중이던 친구는 혼자 앞서 갔고, 선다 싱은 쓰러진 사람을 업고 가는 쪽을 택했다. 선다 싱이 산 정상을 넘어갈 무렵 그의 발길에 먼저 갔던 친구의 시신이 걸렸다.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동사한 것이다. 등에 업은 사람의 온기로 인해 선다 싱은 땀을 흘리며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살신성인이란 인(仁)을 이루는 것이 목숨을 지키는 것보다 우선한다는 뜻으로 중국 고대의 사상가 공자(기원전 551~기원전 479)의 가르침이다. 여기서의 ‘인’이란 글자 그대로 두 사람(人+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로, 겸손이나 배려 또는 존중 등을 의미한다. 진심으로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이 ‘인’이므로,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이 모일 때 실현될 수 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삶의 목표를 부(富)의 축적에 두는 사람이 많아졌다. 남보다 빨리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필요하다. 게다가 최근 10년 동안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한번 낙오되면 다시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고조됐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챙길 여유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부나 명예를 삶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누구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풍족해 보이기도 하고 부족해 보이기도 하는 상대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보다 풍족한 사람과 비교해 가며 자신을 비관하고 불행함을 느낀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삶의 목표를 재설정해야 한다. 나 하나만 아는 이기적인 태도로 이룬 삶은 사상누각(砂上樓閣)에 불과하다.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을 만큼 얕은 양동이에 게를 두 마리 넣으면 서로 앞서 나가려는 게의 뒷다리를 잡는 통에 두 마리 모두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기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면 자신과 주변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들고 만다.

불행해지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다.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은 타인과의 관계 회복이다. 예수가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설파했고, 묵자도 ‘겸애’ 사상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듯 타인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타인과의 관계가 행복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관계를 올바로 정립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의사상자들처럼 목숨도 아끼지 않고 위급한 상황에 뛰어드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무릅쓰고 이웃에 봉사하거나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는 것도 다 희생에 속한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칼 메닝어(1893~)는 정신적 고통을 상담하러 온 환자들에게 “집 문을 걸어 잠그고, 기찻길을 지나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나서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무언가를 하십시오”라고 답했다. 희생으로 남을 보살피는 일이 결국 자신의 삶을 귀하고 소중하게 가꾸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남을 도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행복하지 못해서 혼자만을 위해 살고 있다면, 메닝어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

박형수 기자

◆생각 키우기

 <공통>

① ‘개인주의’ ‘이타주의’ ‘이기주의’의 뜻을 알아보고, 그 사례를 신문에서 찾아보세요.

②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살신성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다섯 가지 이상 발표해요.

③ 오늘날에 적합한 이타적 삶의 모습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세요.

④ 우리 학생들이 범하기 쉬운 이기적 자원봉사와 바람직한 이타적 자원봉사를 구분해 설명해 보세요.

⑤ 인류 역사에서 살신성인을 실천한 성인 3명을 들어보고, 선정 이유를 설명해 보세요.

⑥ 불황이 깊어져도 나눔과 배려의 손길을 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초급>

① 살신성인을 실천한 사람을 신문에서 찾고, 그가 한 행동을 육하원칙에 맞춰 한 문장으로 요약해요.

② 얼마 전 제1회 시민영웅상을 수상한 분 중에 한 분을 선택해 인터뷰 기사를 작성해 보세요.

③ 내가 읽은 인물 이야기 중에서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아낌없이 내놓은 인물들을 찾아 칭찬하는 글을 써 보세요.

④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웃들은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어요. 경제적인 방법 외에 따뜻함을 나눌 방법들을 생각해요.

<고급>

①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살신성인이 필요한 이유를 이야기해요.

② 만약 길을 가다가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이유와 함께 적어요.

③ 오늘날 살신성인을 실현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④ 개인주의가 만연해지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800자 내외로 써 보세요.

⑤ 살신성인을 실천하도록 교화하는 데 교육이 필요한지, 타고난 성품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인지 자신의 생각을 800자로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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