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선 공무소홀도 처벌대상 - 에이즈藥禍 前국장 기소 무사안일 경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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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보 특혜대출과 관련된 은행관계자들에 대해'자기 임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배임죄를 물을 수 있을까.

우리와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에는 형법 제355조에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문제를 일으켰을 경우에는'배임죄'의 적용을 받는다고 규정돼 있다.다만 범죄 구성요건이 워낙 까다로워 검찰에서 적용을 꺼

리는 면이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 검찰이'배임'보다 정도가 낮은'방기(放棄:임무를 포기하는 행위)'에 대해서까지'철퇴'를 가한 사례가 있어 주목된다.

일본 검찰은 지난 12일 도쿄(東京)지법에서 열린'에이즈약화(藥禍)재판.후생성루트'의 첫 공판에서'임무방기'를 이유로 내세워 마쓰무라 아키히토(松村明仁.사진)전후생성 보건의료국장을 기소했다.검찰은 그가 후생성에서 혈우병 치료제를

담당하는 주무과장 재직시절(84~86년)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은 결과 에이즈에 감염될 위험이 있는 비가열 혈액제제가 시중에 돌아다니도록 방치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약품 일부에 에이즈균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주무과장으로서 당연히 시판중지.회수조치를 내렸어야 하는데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검찰이'부작위(不作爲: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음)'를 이유로 담당공무원에게 형사책임을 지운 첫 사례로,관료사회의 무사안일.책임회피 풍조에 일대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문책을 피하는 최선책”

이란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소위 에이즈약화 사건은 마쓰무라 같은 공무원과 돈에 눈이 먼 제약업체들의 합작품으로 그 결과 4백명이 숨지고 1천8백여명이 에이즈에 감염되는 엄청난 피해를 일본사회에 안겨줬다. [도쿄=김국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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