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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목욕탕 DNA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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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알을 깨 보니 남자 아이가 나왔다. 동천에서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이 따라 춤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일월이 청명한지라. 그를 혁거세라 이름 하였다. 이날에 알영정 가에 계룡이 나타나 여자 아이를 낳으니 자태와 얼굴은 유달리 고왔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았다. 북천에 가서 목욕시키니 그 부리가 빠지므로…. 일연 『삼국유사』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하고 문을 나서며 여름에는 날마다 두 번씩 목욕을 하는데 시내 가운데서 많이 한다. 남자 여자 분별 없이 의관을 언덕에 놓고 물굽이를 따라 몸을 벌거벗되 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서긍 『고려도경』

커다란 풀 속에 타인과 함께 발가벗고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물 위에 머리통만 내놓고 황홀한 표정을 짓는 주위 사람들의 모습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나는 물이 너무 뜨거워 비명을 지를 지경이었다. 장 폴 마티스 『프랑스인이 본 한국, 한국인』

그 목욕탕은 남탕과 여탕을 나누는 칸막이 벽이 어른 키보다 조금 높을 뿐이어서 여탕에서 나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오게 되어 있는 구조였다. 뿌연 수증기와 함께 거침없이 넘어오는 벌거벗은 소리들에 주눅 들어선지, 아니면 그 소리들이 주는 관능의 맛을 음미해 보려고 그랬는지, 남탕의 사람들은 늘 조용했다.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어머니는 연탄불로 데운 더운물을 아껴가면서 찬물을 알맞게 섞어 내가 앉은 양푼 속에 쏴아아 쏴아아 부어주곤 하셨다. 목욕이 끝날 무렵이면 마치 총정리하시듯 나를 일으켜 세운 뒤 어깨와 머리 위에 물뿌리개로 물을 정결히 부어내리면 그것은 마치 목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전쟁이 끝난 뒤 평화를 느끼게 하는 단비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어머니는 채송화와 봉숭아에 물을 주듯 내 몸에 물을 주어 나를 자라게 한 것이다. 최인호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

욕실은 눅눅한 습기와 길게 울려 퍼지는 소리, 추운 날이면 창가에 서리는 김, 그리고 다채로운 타일의 화려함으로 모든 것이 흑백 같았던 그 시절에 있어서 아주 특별한 장소였다. 황두진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따끔따끔한 탕 속에 들어가서 다리를 쭉 뻗고 누웠다 … 아이 시원타, 아이 시원타는 늙은이는 뼈가 녹는 모양이다. 고형렬 ‘목욕탕에서’
매일 아침 찬 기운 속을 가르며 이천원짜리 대중목욕탕을 찾는 이들. 그곳에서 그이들은 서로 친구가 되고 언니가 되고 어머니가 됩니다. 벗고 입고 마시고 바르고 웃고…. 박화야 『목욕하는 여자』

뽀얗게 목욕을 하고 나오니 허기가 졌다. 밥집에 마주 앉아 우리는 서로를 보고 감탄했다. “영 때깔이 달라지셨네.” “아무튼 목욕이 피로 회복에는 최고예요. 남자들은 회사 앞 목욕탕이 휴식처라잖아요.” “그러게. 근데 여자들이야 새끼 데리고 가서 한 꺼풀 벗겨 가지고 와야 하니까 휴식처가 아니라 고생터지, 뭐. 나는 사내애를 키우니까 남편 딸려 보냈는데, 때가 그냥 불어서 오는 날이 많은 거야. 웬만치 커서도 내가 데리고 다녔어요. 얼마나 눈치가 보이던지.” 오한숙희 『아줌마 밥 먹구 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보일러를 틀고 목욕물을 받았다. 과음 후 온수 목욕이 건강에 안 좋다는 걸 알지만 상관없다. 욕조에 따뜻한 물이 채워지는 동안 책상을 말끔하게 정리했고 잠시 후 정갈하게 목욕재계했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책상 앞에 앉아서 크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조한웅 『독신남 이야기』

몸을 찌다니! 섬뜩하기까지 하다. ‘불가마’는 더욱 적나라하지 않은가. 이 별천지에서 사람들은 간단하게 변신한다. 목욕재계로 몸을 정결하게 한 다음 유니폼(?)으로 갈아입음으로써 이 희한한 영토의 일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잠옷처럼 헐렁헐렁한 그 옷을 입으면 편안해진다. 화장을 열심히 하는 젊은 여성들도 많은 사람들 앞에 맨 얼굴을 편안하게 드러낸다. 김찬호 『문화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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