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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 87년 만의 고백] ③ 두 아들 구속으로 끔찍했던 2002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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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내 이희호 여사가 자서전을 발간했다. 퍼스트레이디로, 한 남자의 아내로, 엄마로, 여성∙사회운동가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그녀. 여든일곱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녀는‘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녀가 담담한 문체로 적어 내려간 영욕의 세월.

#셋째 무대

두 아들 구속으로 끔찍했던 2002년

2002년은 악몽이었다. 월드컵으로 뜨거웠던 그해 함성 속에서 우리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꿈을 이루는 순간, 30년을 조이던 긴장의 끈이 확 풀리면서 바로 그 순간 시험에 들었는가 보다(2남 김홍업은 2002년 6월 알선수재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1년 6개월을 복역했으며, 2005년 8월 사면 복권되었다. 3남 김홍걸은 그에 앞선 5월 18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 사형수 아버지’에서 ‘대통령 아버지’가 되었다. 그래서 냉정하고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 해는 괴롭고 아픈 일로 점철된 일생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고난의 시간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아들들이 아버지의 일생에 불명예를 안기다니. 처음에는 믿기 지 않았다. 아들들이 한없이 야속했다. 셋째에 이어 둘째까지 구속되었을 때는 숨이 막혔다. 우리 내외는 말을 잃었다. 각자의 서재에서 따로 시간을 보내다 늦은 밤에야 안방으로 갔다. 아들들에 대한 분노를 삼키는 남편을 보며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두려웠다. 차라리 나에게 ‘당신은 뭐 했느냐?’고 역정을 냈다면 덜 괴로웠을 것이다.

일이 일어나기 전 국정원에서 보고를 받은 남편은 막내에게 수차례 경고를 했다. 아버지와 주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홍걸이는 반발했다. 그는 결국 사고를 냈다. 홍걸이는 5월 16일 검찰에 출두해 18일 구속 수감됐다. 한 달여 후에 둘째 아들도 구속됐다. 남편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하루속히 청와대에서 나가고 싶었다. 이런 수모를 당하려고 그 고난을 겪었단 말인가. 아들들에 대한 아버지의 분노는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풀어지지 않았다. 남편의 응어리는 2007년 4월 둘째 홍업이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나서야 봄눈 녹듯 풀렸다.


그해 5월 10일은 결혼 4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참 길고도 매서운 세월을 함께 걸어왔다 싶다. 미국 망명 시절에는 자동차 옆자리에 아내가 없어도 모른채 떠나 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즈음 많이 달라졌다. 남편은 길 떠나는 아내가 혹여 자동차 사고를 당할까 기사에게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 그것도 부족한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한다.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험난한 길을 바삐 걸어온 동행자에서 노부부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 부부 사이에 불화가 있다면 그건 온도 차이 때문이다. 그는 추위를 못 견뎌하는 반면나는 더위를 유난히 못 견딘다. 그는 여름에도 냉방을 하면 내복을 입는다.

반면 나는 겨울에도 내복을 입지 않으며 머릿속에서 땀이 흐른다. 그래서 청와대에서 지낼 때 대통령 수행원들은 온도를 ‘올려라’하고 내 수행원들은 ‘내려라’하며 오랫동안 신경전을 벌였다고 한다. 87년 동안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니 감회가 깊다.

선배들은 거의 세상을 떠나고 내 친구들 가운데 몇 사람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병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아직 건강하게 살아서 여행도 하고 남편과 함께 먼 나라로 출장을 가기도 한다. 이러한 날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모른다. 지금까지의 삶에 감사한다.

취재_윤혜진 기자 사진_임효진(studio lamp) 참고자료_『동행』(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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