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터’ 다시 감정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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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위작 논란에 휩싸여 온 박수근 의 ‘빨래터’에 대한 재감정이 추진된다. 17일 열린 ‘빨래터’ 관련 명예훼손 등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부장판사 한호형)는 과학감정의 재실시를 제안했고 원고인 서울옥션은 이에 응하기로 했다. 추가 과학감정의 대상은 문제작 ‘빨래터’와 서울대·도쿄예대의 과학감정에서 기준작 중 하나로 제시됐던 ‘고목과 여인’이다. 재판부는 양측으로부터 재감정 방식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내년 1월 12일 추가 감정이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다.

‘빨래터’에 대한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미술잡지 ‘아트레이드’ 편에 서 온 최명윤 명지대 교수는 ‘고목과 여인’이 그려진 바탕은 1980년대 후반에 개발된 집섬보드(MDF)라고 주장해 왔다. ‘아트레이드’측은 두 작품의 바탕 분석으로도 진위를 판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빨래터’의 경우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 천의 형태와 만들어진 모양 등을 분석해 연대를 알 수 있을 거라는 주장이다. 서울옥션 역시 구체적 재감정 방식을 고민 중이며 18일 중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재감정에 적극 임하겠지만, 두 작품 모두 소유자가 따로 있는 만큼 이들의 협조는 얻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예대 “바탕은 조사 안 해”=현재 두 작품이 그려진 바탕이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도쿄예대 대학원 기지마 다카야스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작품의 옆이나 뒤에 묻은 물감 성분은 조사했지만, 의뢰작들이 그려진 바탕은 따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지마 교수는 서울대와 별도로 서울옥션의 과학감정 의뢰에 응한 바 있다. 당시 기지마 교수는 “의뢰 작품들은 같은 팔레트에서 같은 사람이 그렸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서울대가 캔버스 천·캔버스 틀·액자에 대해 연대 추정을 한 윤민영 교수의 보고서를 인정하지 않고 윤 교수를 보직해임했으며, 기지마 교수는 바탕을 따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했으니 두 차례의 과학감정에서도 바탕이 제대로 조사되지는 않은 셈이다.

기지마 교수는 “우리 연구실은 의뢰받은 작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가리는 목적으로 조사하는 게 아니다. 자외선·X선 등 다양한 조사 결과 의뢰받은 6∼7개 작품이 모두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결론내렸을 뿐”이라고 재확인했다. 또한 “1000년 이상 떨어져 있다면 몰라도 50여 년 전의 작품이라면 탄소동위원소를 통한 연대 추정은 어려워 이 방법은 쓰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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