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동아시아 갈등 중재할 적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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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소프트 파워를 키우려면 동아시아의 평화 중재자가 돼야 한다.”


마셜 부톤(66·사진·右) 미국 시카고국제문제연구소(CCGA) 회장은 11일 이숙종(51·左)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과 가진 대담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동아시아의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독특한 지위를 갖고 있다”며 “한국이 이런 지위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눈앞의 이해에 급급하기보다는 국제적 안목에서 동아시아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부톤 회장은 CCGA와 EAI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후원한 ‘소프트 파워와 동아시아 외교’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다. 국내외 소프트 파워 연구의 권위자들이 참석한 콘퍼런스는 12일까지 이틀간 서울 국도호텔에서 열린다. 부톤 회장과 이 원장은 11일 국도호텔에서 1시간가량 대담했다.

이: CCGA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 있다. 오바마와의 인연은.

부톤: 개인적으로 오바마를 세 번 만났다. CCGA는 2004년 7월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한 그를 초청해 그의 외교정책을 들었다. 2005년과 2006년에도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인 그를 CCGA 세미나에 초대, 미국이 직면한 외교적 도전들을 논의했다.

이: 케냐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에서 자라기도 한 오바마는 스스로 국제사회에서 엄청난 소프트 파워를 갖고 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강력하고, 영리하며, 원칙을 지키는 국가 안보 전략을 추구하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미 국무부의 외교 예산이 국방부 예산의 1%에 불과할 정도로 미국의 외교 역량이 부족하므로 정부의 외교를 도울 비영리 법인(유에스에이-월드 트러스트)을 설립하자는 의견도 나오는데.

부톤: 오바마의 비전은 조지 W 부시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완화시켰으나 도전도 만만찮다. 먼저 그는 국제 문제에서 미국의 지도력을 유지하면서 유럽연합(EU) 등의 협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또 미국의 소프트 파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국제 현안이 많은 만큼 경제력이나 군사력 등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적절히 결합해야 한다. 여기에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이 경제 회생인 만큼 국제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있다. 국제 문제를 다룰 비영리 법인 설립은 시급한 문제라 할 수 없다.

이: 미들 파워로서 한국은 소프트 파워에 관심이 많다. 하드 파워로는 중국·일본과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 6월 발표된 CCGA·EAI 공동 조사에서 한국의 소프트 파워(100점 만점에 58.3점)가 중국(56.3점)보다 높게 나온 것은 의외였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무엇이고, 어떻게 강화해야 하나.

부톤: 소프트 파워를 형성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미국의 소프트 파워가 부시 정부에 의해 일부 훼손됐다고 하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0년 이상 쌓아놓은 유산이 있다. 중국은 경제 개방을 한 지 30년도 채 안 됐고, 세계 경제 엔진으로 부상한 지는 10년 안팎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전쟁 참전 이후 동맹관계를 유지한 한국을 중국보다 높게 평가한다. 그렇다고 안도하면 안 된다. 다자외교에 적극 참여하는 등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의 소프트 파워와 국가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 한국의 경제성장 모델을 수출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인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떨어지는 것 같은데 한국의 소프트 파워와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방안은.

부톤: 로버트 스칼라피노 UC버클리 명예교수는 한국을 ‘아시아의 지렛대(fulcrum)’라고 표현했다. 중국·일본 등 지역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이 사심이 없는 중재자가 된다면 지렛대의 역할을 하며 소프트 파워를 극대화할 수 있다. 북핵 등 단기 현안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장기적 시각에서 동아시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정재홍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마셜 부톤=하버드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 국방부 정책분석관을 거쳐 아시아 소사이어티 부위원장으로 20년간 재직했다. 2001년부터 CCGA를 이끌고 있다. 그의 저서 『외교의 단절』은 소프트 파워 주창자인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로부터 “미국의 외교정책을 이해하길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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