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년 만에 재기앨범 발표한 서우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한번 추위가 뼛속까지 스미지 않고는 어찌 진한 매화의 향기를 얻으리."

당나라의 고승 황벽선사의 말처럼 싱어 송 라이터 서우영에게 지난 4년은 '향기를 얻기 위한 겨울'이었다. 2000년 야심차게 3집 앨범을 발표했지만 제작자가 계약금을 챙기고 잠적해 버렸다. 음반은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당했고 그는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 채 계약금을 갚아야 했다. 차도 팔고 써놓은 곡들도 팔아치웠다. 닥치는 대로 여러 앨범의 세션을 맡기도 했다. 4집 얘기보다는 그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을 먼저 건넸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며 세션을 했지만, 서럽고 속상해서 많이 울었어요."

그토록 힘든데도 왜 음악을 놓을 수 없었을까. "음악은 저와 공감할 수 있는 친구를 찾는 작업이거든요. 이번 음반을 내면서도 내 힘으로 뭔가를 완성했다는 뿌듯함을 느꼈어요."

3집에 이어 함께 작업한 일본인 프로듀서이자 스승인 하치는 "이 앨범에는 우리의 청춘이 담겨 있다"고 말했단다. 그만큼 부끄럽지 않다는 뜻이리라. 서우영의 기타 연주는 가요계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이다. 그는 "과장되지 않은 소리가 좋아서" 어쿠스틱 기타만 고집한다. 4집 앨범 '가끔'은 100% 자비로 제작했다. 음반사가 서우영이란 뮤지션에게 투자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내가 정말 실력이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했죠. 아직도 의심 중이고요."

만약 다음 음반도 자비로 제작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는 못된(?) 질문을 했더니 그의 목소리에 밝은 기운이 실린다. "막노동이라도 할 겁니다. 음악은 제게 남은 유일한 보물이니까요." 새 음반 '가끔'은 세련미와 절제의 미덕이 공존하고 있다. 단출한 악기 편성으로도 꽉 찬 맛을 전하는 건 그와 하치의 호흡과 내공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각각의 곡에서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구성은 음반 전체를 세련미로 수놓는다.

어쿠스틱 기타를 사용한 타이틀곡 '가끔'은 전형적인 서우영 스타일이다. 한번만 들어도 따라 부를 수 있는 '꿈 같은 리듬'은 중국풍의 바이올린, 시적인 가사가 돋보인다. 힙합의 탈을 쓴 어설픈 랩음악과 R&B를 가장한 지루한 발라드가 범람하는 최근 가요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앨범이다.

송기철(대중음악평론가/KBS-TV 무한음악지대 진행)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