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구조조정용 실탄 확보하라” 메시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정부의 구조조정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된 ‘단계별 은행 자본확충 방안’도 그중 하나다. <본지 12월9일자 1면>

기업 구조조정과 은행 자본 확충은 동전의 양면이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하면 은행 부실이 늘어나 은행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면서 “은행 자본 확충안을 만든 것은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임박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은행 둑을 튼튼하게 쌓아 놓고 살릴 기업과 정리할 기업을 분명하게 구분하겠다는 것이다.

향후 경기 상황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정부는 앞으로 3~6개월 경기가 더 나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4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1분기엔 마이너스 폭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대로 가면 유동성 위기에 몰리는 기업이 속출할 수밖에 없어 그대로 두면 은행까지 부실해질 위험이 있다”면서 “어떤 형태로든 은행 자본 확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우선 당분간은 은행이 스스로 자본을 보강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자본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는 각종 채권을 발행하거나 증자를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에 부실이 쌓이면 이런 채권이 시장에서 소화되기 어려워진다. 이 경우 은행 자본확충펀드를 만들어 지원하겠다는 것이 정부 구상이다.

펀드에는 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과 연기금이 참여한다. 이는 은행이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정부가 자본 확충을 도와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공적자금 투입은 최후 단계로 미뤄 두고 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현행법 아래서 공적 자금을 넣으려면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8% 밑으로 떨어져야 한다. 법을 바꿔 선제로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도 있지만 반대가 많다. 공적자금이 들어가면 문책이 불가피한 은행의 기존 경영진과 주주들의 반발도 만만찮다.

정치적 이유도 있다. 공적자금 조성은 정부 경제정책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정부와 여권은 내년 4월 보궐선거와 내후년 지방선거를 의식하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공적자금을 조성할 경우 야당의 정치공세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면서 “공적자금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은 공적자금 조성이 필요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선진국들도 은행을 국유화할 정도로 상황이 어려운 마당에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