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릴 기업이냐 퇴출 기업이냐 … 민간 조정위가 ‘최후의 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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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이 9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기업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민간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이 먼저 진행된다. 채권금융회사 조정위원회의 권한이 대폭 확대돼 기업 구조조정을 총괄하게 된 것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합동의 기업재무개선지원단은 채권단의 기업 구조조정을 측면 지원한다. 다만 채권단의 구조조정 속도가 느리거나 부실기업을 제대로 솎아내지 못할 경우 금융당국이 직접 개입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이 같은 내용의 ‘기업 구조조정 추진 방향과 체계’를 9일 발표했다.

핵심은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총괄하는 채권금융회사 조정위다. 7명의 민간위원으로 이뤄진 조정위는 이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구성돼 있지만 사실상 활동이 거의 없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조정위 위원장을 비상근에서 상근으로 전환하고, 현재 4명뿐인 사무국 직원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곧 명망 있는 구조조정 전문가를 위원장으로 선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정위에 앞서 채권금융기관협의회(이하 채권단)가 기업을 네 단계로 나눠 일시적 자금부족(B등급) 기업과 부실 징후(C등급)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과 구조조정 방안을 결정한다. 그러나 채권단 내의 의견이 엇갈릴 경우 조정위가 이를 조정하고, 최종 구조조정 방안을 결정하게 된다. 결국 조정위가 구조조정의 최고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것이다. 또 조정위는 C등급 기업에 대한 워크아웃 결정 등을 조정했지만 앞으로는 B등급 기업에 대해서도 채권 금융회사가 요청하면 구조조정과 관련한 조정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외환위기 때와 달리 정부가 아닌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을 택한 데 대해 김종창 금감원장은 “지금은 기업 부실이 서서히 발생하고 있고, 기업의 부채비율 등 재무여건도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채권단이 제대로 하지 못하면 금융 당국이 관여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또 “기업 구조조정은 기업 살리기에 중점을 두고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영체질은 좋지만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대기업도 중소기업과 마찬가지로 채권단의 적극적인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금융 당국이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과 기업 살리기에 주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론 구조조정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 당국은 이미 몇 개 대기업이 부실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주채권은행에 대책 마련을 요청했다. 또 건설사 대주단 협약과 관련, 금융 당국은 “구조조정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규자금을 신청하는 기업에 대해선 채권단이 워크아웃(채권은행 공동관리) 등 구조조정을 유도키로 했다.

김 원장도 “기업을 살리려고 노력하겠지만 문제 있는 기업은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신속히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도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이 진행된다고 해서 그 강도가 약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대기업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채권금융기관 조정위와는 별도로 구성되는 채권은행 조정위가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을 맡게 된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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