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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69. 방콕 아시안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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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방콕 아시안게임 폐막식은 ‘한국 잔치’였다. 왼쪽부터 안상영 부산시장, 필자, 아마드 OCA 회장, 방콕조직위원장.

1998년 12월 9일부터 20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외환위기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라 대표선수들이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데도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김정행 단장, 신민자 부단장이 이끄는 700명의 한국선수단은 금 65, 은 46, 동 55개를 따내 일본(금 52, 은 60, 동 67)을 제치고 종합 2위에 올라 국민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중국은 금메달만 129개로 우리의 두 배였다. 그런데 중국의 우샤오주 체육장관이 “인구 비례로 하면 한국이 제일”이라고 얘기해 기분이 좋았다.

한국의 메달밭인 태권도에서 금메달 11개를 따냈으며 레슬링에서도 7개의 금맥을 캤다. 특히 요트에서 금메달 6개를 획득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야구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거까지 총출동한 ‘드림팀’이 구성됐다. 박찬호·서재응·김병현과 김동주·임창용 등이 포함된 드림팀은 무적을 자랑하며 우승해 모두 병역 혜택을 받았다. 특히 합법적으로 군 문제를 해결한 해외 진출 선수들의 기쁨이 컸다.

마라톤에서는 이봉주가 2시간12분32초로 우승했다.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김원탁,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황영조에 이어 3연속 마라톤을 제패한 기쁨을 누렸다. 황영조가 히로시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해 크게 걱정했지만 이봉주가 특유의 성실함으로 그 공백을 잘 메워줬다. 이봉주는 2년 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1위로 들어오다 막판에 추월을 허용해 2초 차로 금메달을 놓친 아쉬움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조금은 달랠 수 있었다. 탁구에서 김택수가 중국 선수들을 잇따라 꺾고 금을 딴 것도 기억에 남는다.

한국은 33개 종목 중 축구·소프트볼·조정·세팍타크로를 제외한 전 종목에서 메달을 땄다. 축구대표는 첫 게임에서 투르크메니스탄에 2-3으로 역전패해 충격을 주더니 8강전에서는 2명이 퇴장 당한 태국에 1-2로 져 탈락하는 바람에 온갖 욕을 다 먹었다.

방콕은 시설도 훌륭했고, 경기운영도 수준급이었다. 마침 태국 IOC 위원인 인드라파나를 세계태권도연맹(WTF) 부총재로 지명했고, 샤룩 태국 사무총장이 회장으로 있는 세팍타크로 세계연맹을 GAISF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그런 것도 다 스포츠외교다.

4년 뒤 차기 대회 개최지는 부산이었다. 나는 사마란치 위원장을 대리한 IOC 대표인데다 부산아시안게임조직위원장 겸 KOC 위원장이어서 발언권이 막강했다.

폐막식은 IOC 대표인 나의 주관으로 진행됐다. 방콕조직위원장에게 대회기를 받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이 나에게 전달했고, 나는 다시 안상영 부산시장에게 대회기를 넘겨줬다. 국내 언론은 ‘폐막식은 한국 잔치’라는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다.

나는 체육회장으로서 외환위기 속에서 후원기업이 경기단체에서 손을 떼는 것과 팀 해체를 막아야 했다. 또 후원금이 많이 줄어도 엘리트스포츠의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힘을 쏟았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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