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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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야,너 변태 아냐? 여자들 가지고 있는 물건들 모으고 하는 게 다 변태래.”

용태가 히히덕거리고 있는 레지들을 흘끗 쳐다보며 눈에 웃음을 담고 입술을 쫑그렸다.

“너,초록색 팬티 찾는 것은 어떻고? 네 경우가 더 심한 변태인 것 같은데.이런 걸 유식한 말로 뭐라 하는 줄 알어?”

“너 유식한 거 다 알고 있어.그래 잘난 체 좀 해봐.”

“페티시즘이라 그러는 거야.여자들 입고 있는 속옷이랑 루주 같은 거 훔치는 거 말이야.어떤 지저분한 놈은 생리대도 훔친다더라.그런 페티시스트들은 만원 지하철 같은 데서 여자들이 메고 있는 핸드백에 자기 사타구니를 대고 기분을 내기도

한대.여자를 직접 건드리지 않으니까 성추행범으로 몰릴 리도 없지.그리고 여자들 신체의 일부분에만 집착하는 것도 페티시즘이라고 하지.”

“페티시즘,페티시스트라 그러니까 뭐 대단한 치들같이 들리는데.요즈음 동성연애자들 모임이 생기고 자기들 권리를 주장하고 하는 판에 그 페티시스트들도 클럽을 만들어서 회지를 발간하고 하는 거 아냐?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말라,우리

도 감정을 지닌 정상적인 인간이다,하면서 말이야.”

“하긴 유명한 도스토예프스키도 여자들 엄지 발가락만 보면 흥분을 하는 페티시스트였지.”

“유명하다는 놈치고 변태 아닌 놈 없을 거야.뭔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유명도 해지고 그럴 거 아냐? 마이클 잭슨 봐.온갖 변태로 똘똘 뭉친 놈 같잖아.근데 그건 그렇고,준우가 뭐라 그러대? 무슨 묘안이라도 내어놓았어?”

우풍이 다탁에 놓인 크리넥스 화장지를 다시 호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용태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뭘 그리 다정하게 속삭이고 그럴까? 둘이 혹시 사귀는 거 아냐?”

조금 전에 다녀간 그 다방 레지가 어느새 다시 와 용태 옆자리에 앉으며 눈웃음을 쳤다.우풍이 얼른 몸을 바로하여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

“차 주문 안 해? 차 마시면서 손님 기다리라고.나한테도 한잔 사주고.”

레지가 슬쩍 용태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렀다.용태가 우풍에게 눈짓을 하면서 일어섰다.

“오줌이 마려워 일단 화장실에 다녀와서 차 주문 할게요.여기 화장실이 어디 있죠?”

“카운터에서 열쇠 받아가지고 이층으로 올라가.”

“아이쿠,나도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는데.난 큰 게 나오려고 해.아유,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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