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좌편향 문제지만 우편향도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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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초·중·고교에 배포한 건국 60주년 기념 현대사 영상물(DVD)에 대해 우리는 일정한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편향된 내용으로 학생들에게 왜곡된 역사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적의 역사’라는 제목의 이 영상물은 역대 정권의 치적에 대한 칭송이 대부분이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긴 부정적 유산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고 경제 개발의 성과만 부각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 시 업적인 청계천 복원사업을 영상물 표지에 내세운 것은 낯간지럽다. 산업화의 업적을 주로 다루다 보니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기적인 민주화의 성과는 소홀히 다뤄졌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항쟁, 남북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온 6·15 남북 정상회담 등은 아예 언급이 안 됐다.

역사 교육은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쳐선 안 된다. 그래야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균형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 지난 정부에서 검정을 통과한 역사교과서가 새 정부 들어 논란이 되고 있는 것도 편향성 때문이다. 지나치게 좌편향적인 부분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다. 그걸 바로잡는다고 지나치게 우편향으로 가는 것 또한 문제다. 어린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주고 가치의 혼란을 줄 뿐이다. 건국 60주년을 맞아 학생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만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만일 그랬다면 이는 단견이다. 공정성·객관성이 요구되는 학생용 역사 학습자료를 이런 식으로 허술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교과부는 배포된 영상물을 수거하거나 재편집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한다. KBS나 KTV(한국정책방송)의 영상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어서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4·19 혁명’이 ‘4·19 데모’로 둔갑한 것도 대한뉴스 영상을 그대로 담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용렬한 자세다. 좌편향이 역사 왜곡이라면 우편향도 역사 왜곡이다. 이래서야 어떻게 좌편향 역사교과서를 바로잡겠다는 소린가. 교과부는 학습자료로 부적절한 영상물을 수거해 폐기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