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특수강 정리나선 김현배 삼미그룹 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팔을 자르는 것같아 마음이 정말 아팠지만 이 방법밖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포항제철에 주력인 특수강(봉강.강관)공장을 매각.정리키로한 삼미그룹의 김현배(金顯培.39)회장은 22일 본사와의 단독인터뷰를 통해“아버님과 형님이 물려주신 회사를 제대로 못지켜 죄송할뿐”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金회장은 그러나 향후 회사경영과 관련,“필요하다면 대치동 사옥을 정리하고 전세나 월세 사무실로 옮기는 한이 있더라도 남은 빚을 정리한뒤 반드시 경영정상화를 이뤄'삼미'라는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하겠다”며 재기에 강한 집념을 보였

다.

다음은 金회장과의 일문일답.

-특수강 매각을 결심하게 된 배경은.

“회사 빚이 늘어나면서 먼저 단자거래가 끊기더니 은행들도 대출금 회수에 나서더군요.정부에 지원요청을 했지만'특혜시비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거절했습니다.지난해 12월초쯤엔 외톨이가 되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그래서 매수.합병(M&A)

을 해서라도 돌파구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포철 실무자를 만나 특수강 인수를 제의했고 그 다음엔 빠른 속도로 매각협상이 이뤄졌습니다.12월18일 매각의향서를 체결했으니까요.”

-사내에선 반대도 많았다는데.

“중역들은'이런 식으로 물러날순 없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법정관리를 신청하자는 의견도 나왔어요.이자감면등을 받아 고비를 넘기면 회생할 수 있지않느냐는 것이었지요.그러나 결국은 국민세금인데 국가나 정부에 부담을 줄 수는 없다고 생각

했습니다.저의 회사 역사가 그래도 43년입니다.우리 스스로 자구노력을 할 수 있는데 그런 특혜를 저로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형(金顯哲전회장)과 의논을 했는지.

“전화로'이 방법(매각)밖에 없는 것 같다.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더니'네뜻대로 해라.너의 책임이 아니다.내가 (한국에)있을 때부터 있어왔던 문제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정부와 조율.협의는.

“안했습니다.매각결정후 통상산업부에 찾아가니 오히려 섭섭해하더군요.사실은 부담주기 싫어서 외부 사람은 물론 친구등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던 이유는.

“특수강은 참 힘든 사업입니다.일반 철강공장보다 투자비가 4배나 더 듭니다.대표적인 다품종 소량생산 업종이기도 하구요.본전을 뽑을 때까지 회임기간도 길어 빌린 돈에 지불해야하는 이자부담이 중요한 경영 변수가 됩니다.미.일.유럽등에선

정부가 기간산업이라고 해서 특수강업체에 여러 지원을 해온 사례가 많습니다.금리의 경우 일본은 연리 1.5%면 돈을 빌리는데 우린 13%입니다.87년에 특수강 공장을 증설키로 하고 89~91년사이 3천억원을 일시에 투자했었습니다.그

런데 과다한 금융부담에 공급과잉까지 겹치면서 89년 1백32%에 불과해 다른 기업들이 부러워했던 부채비율이 지난해엔 8백60%까지 올라갔습니다.”

-경기예측을 잘못해 투자를 무리하게 한 것 아닌가요.

“90년대 들어서도 특수강 수요는 연평균 10%이상씩 계속 늘어왔습니다.후에 기아특수강의 예상치 못한 등장등으로 공급과잉이 된 것이지요.특수강은 76년 선친(고 金斗植창업주)께서'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사업이라

고 하니 한번 해보자'고 해 시작한 사업입니다.오전4시면 창원공장에 내려가셔서 진흙뻘속에서 공장건설을 지휘하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선친은 작고후인 87년 기간산업 육성 공로로 금탑산업훈장까지 타셨습니다.선친의 유

지가 담긴 사업인데 어떻게 이익적 측면만을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포철에 넘기기로 한 것은.

“특수강은 누군가는 꼭 해야할 사업입니다.생산량의 70%가 자동차에 들어갑니다. 삼미때문에 특수강을 공급받는 여타 산업체들이 피해를 보면 안되니까 포철에 넘겨서라도 국내 특수강 산업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또 국내에

서 포철만큼 특수강을 잘 아는 기업이 없습니다.포철에서 직원을 저희 회사에 파견해 특수강을 배워간 적이 있고,전회장때는 포철.삼미 지분을 일부 맞교환하자는 제의까지 받았던 것으로 들었습니다.시너지효과 측면에서 포철이 최적이지요.포철

에 외상값 9백억원이 밀린 것도 계기가 돼 인수요청을 했는데 김만제(金滿堤)회장등 포철측에서 우리의 어려운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줘 개인적으론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읍니다.포철이 맡으면 풍부한 인력.자본.기술로 우리나라

특수강산업을 일으켜세울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삼미그룹의 향후 계획은.

“과거에도 몇번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를 극복한 경험이 있습니다.아버님이 세운 회사의 이름이 지워져서는 안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이번 매각으로 1조여원이었던 은행부채가 절반이하로 줄었습니다.앞으로도 전국에 걸쳐있는 물류하치장과 가공

공장등 보유하고 있는 자산들과 나머지 계열사 일부도 추가로 처분할 계획입니다.필요하다면 지금의 대치동 사옥도 파는등 빚을 최소한으로 줄이는등 재기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습니다.

남아있는 스테인리스 강판분야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40%정도를 유지하고 있는데다 적은 인원으로 큰 외형을 올릴 수 있는 이점도 있습니다.삼미특수강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스테인리스강판을 만들기 시작했던 66년의 심정으로 돌아가 강판업계의 선두자리를 확고히 할 계획입니다” 〈민병관.이수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