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기차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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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를 (채찍으로) 후려치는 느낌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빨리 달리는 일이다.” 중국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鄧小平)이 일본 방문길에 오른 1978년 도쿄에서 교토까지 두 시간여 동안 고속철도 신칸센 열차를 타고 난 뒤 남긴 소감이다. 오랜 잠에서 막 깨어난 중국의 개방을 설계하고 있던 그에게 신칸센 탑승 경험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던 듯하다. “좁은 나라(일본)에 과연 이렇게 빠른 기차가 필요할까”라고 말한 것도 따지고 보면 광활한 중국 대륙에 반드시 고속철도를 깔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는지 모른다.

그로부터 꼭 30년이 지난 올해, 중국은 정기운행편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열차를 보유한 나라가 됐다. 올림픽 개막 직전 개통한 베이징∼톈진(天津) 간 고속철도는 최고 시속 350㎞로 달린다. 이동시간은 종전 1시간30분에서 27분으로 줄어들었다. 2010년에는 베이징∼상하이(1300㎞)를 비롯한 주요 노선이 개통된다. 착공 5년 만이다. 한국이 경부고속철도 398.4㎞를 놓는 데 12년이 걸린 사실을 감안하면 열차 속도만큼이나 빠른 공사 속도다. 고속철도 건설 계획이 끝나는 2020년에는 총 연장이 2만㎞에 이르게 된다. 일본·독일·프랑스 등 고속철도 선발 국가들의 노선을 모두 합쳐도 5000㎞에 못 미친다.

중국은 이처럼 야심 찬 프로젝트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쓰나미에 휩쓸린 중국 경제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대규모 인력과 자본이 투입되는 ‘기차 경제’(로코모티브 이코노미)로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발상은 1930년대 공공 사업으로 대공황을 타개한 뉴딜 정책을 연상시킨다.(중앙일보 12월 2일자)

19세기의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철도를 통해 공간은 살해당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시간밖에 없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인류 문명의 역사는 거리와 공간의 소멸 과정이기도 하다.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까지 연결하는 통신의 발달이 한 축이라면, 인류의 생활반경을 넓혀준 교통의 발달이 나머지 한 축이다. 거리의 소멸에 대한 욕망은 중국처럼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에 더욱 절실할 것이다. 중국의 ‘기차 경제’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날, ‘중국=만만디’란 등식도 함께 소멸될지 모르겠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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