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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적어 바깥바람 덜 타고, 지진 복구 72조원 풀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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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점지한 천혜의 땅 쓰촨(四川)성.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에너지·자원·식량이 풍부한데다 서부대개발, 쓰촨대지진, 농가소득 증대 등의 호재가 겹친 덕택이다. 중앙SUNDAY가 쓰촨성 청두를 찾아 현지 르포를 한다. 청두에서 성공한 일본계 백화점의 사장도 만나봤다.

지금부터 1800년 전. 47세의 유비(劉備)는 융중(隆中)땅에 칩거 중이던 27세의 제갈량(諸葛亮)을 찾아 한(漢)왕실 부흥과 천하 통일의 지혜를 구한다. 제갈량이 제시한 해법은 ‘익주(益州)에서 후일을 도모하라’는 것이었다. “익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굳건한 요새와 같고, 기름진 옥토가 천리에 뻗쳐 있어 제왕의 웅지를 틀기에 적합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천부지국(天府之國·물산이 풍요롭고 진귀한 물건이 많이 나는 나라)’으로 불린 곳이다. 익주는 지금의 쓰촨(四川)이다.

중국 중부의 거대한 분지 쓰촨의 전략적 가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천하가 어지러울 때 도피처를 제공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케 하는 땅이다. 중일전쟁 때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중국을 지켜낸 요충지가 쓰촨이었다. 천하가 다시 어지럽다. 미국발 경제위기 때문이다. 위기 때면 완충지 역할을 했던 쓰촨은 과연 이번 경제위기를 비켜갈 수 있을까.

청두, 유일하게 경기 살아있는 시장

청두의 최고급 백화점인 왕푸징(王府井). 지난달 28일(금요일) 오후에 들른 왕푸징백화점은 쇼핑객들로 분주했다. 젊은이들은 삼삼오오 의류 코너를 들락거리고, 가전 매장에선 특판 행사에 모인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음식점 역시 만석(滿席)이었다. 백화점 취재 후 찾은 무지개다리(彩虹橋)옆 쓰촨요리 전문 음식점 인싱(銀杏)에선 5개 층 테이블이 꽉 찼다. ‘이곳이 쓰촨 대지진(5월 12일)을 겪었던 곳이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왕푸징백화점 이랜드 매장에서 만난 김영주 이랜드 청두사무소장은 지역경제 현황을 묻는 질문에 “지금까지는 별 영향이 없다”며 “올 매장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40%쯤 늘어났다”고 답했다. 대지진 직후 매출액이 다소 줄었지만 6월 이후 회복돼 안정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단다. 그는 “요즘에도 하루 5만 위안(약 1000만원) 안팎의 매출은 유지된다”며 “청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경기가 살아 있는 시장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경제가 악화하고 있지만 청두 시장이 독야청청 활황세를 유지하는 이유는 수출 비중이 작기 때문이다. 쓰촨성의 지난해 수출액은 86억1000만 달러. 중국 전체 수출액의 0.7%에 불과하다. 수출 감소로 인한 타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미국발 경제위기가 아직 쓰촨 분지를 감싸고 있는 높은 산을 넘지 못한 것이다. 이영준 KOTRA 청두 무역관장은 “마오쩌둥의 ‘3선 전략(군수산업의 내륙 이전 정책)’ 덕택에 쓰촨에선 중화학공업이 발달했다”며 “여기에 풍부한 농산물이 뒷받침되고 있다”고 말했다. 천연가스·수력발전 등 에너지 생산량도 풍부하다. 외부 도움 없이도 쓰촨 경제는 굴러갈 수 있다.

높은 소비 성향은 쓰촨 시장의 또 다른 특색이다. 쓰촨인들은 전통적으로 먹을 걱정이 없는 터라 저축보다 소비가 많다. 청두의 한 외국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천훙장(陳泓江)은 “이곳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모두 써버리고, 자식에게 재산을 남겨주지 않는다”며 “내 경우 월급 6000위안(약 120만원) 중 4000위안 정도를 먹고 마시는 데 쓴다”고 말했다. 탄탄한 산업 구조와 풍성한 먹거리, 1억2000만 명(충칭 포함)의 거대 시장이 ‘쓰촨 경제공화국’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쓰촨 대지진은 아이러니하게도 청두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김형택 청두지사장은 “10월 이후 복구작업이 본격화되면서 굴착기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며 “청두에서 지난달 105대의 굴착기를 팔아 판매량이 전달 대비 18% 늘어났다”고 말했다. 복구작업을 위해 풀린 돈만 올해 3600억 위안(약 7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쓰촨성 성도(省都) 청두는 99년 시작된 서부 대개발의 출발점이다. 서부 곳곳에서 진행된 고속도로 건설 프로젝트는 중국이 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렇다면 쓰촨은 이번에도 위기 탈출의 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까. 해답은 바로 농촌이다.

청두 남쪽으로 자동차를 몰아 1시간 만에 도착한 신진(新津)현 위안산(袁山)촌. 사방을 둘러봐도 들판밖에 보이지 않는 농촌이다. 농민 위안푸칭(袁福淸)의 거실에 들어가니 TV·냉장고 등 가전제품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 새것이다. 위안 부부는 휴대전화도 갖고 있었다. 벽지 농가에선 ‘사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전제품 보급정책, 농촌 수요 자극

위안푸칭이 거실에 가전제품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것은 쓰촨에서 시범적으로 시행된 ‘가전제품 농촌 보급(家電下鄕)’ 정책 덕택이다. 농촌 후커우(戶口·주민등록)를 가진 농민들이 저가의 TV·냉장고·휴대전화 등을 구입할 때 13%를 깎아주는 제도다. 지난 10개월 동안 쓰촨성에서 판매된 ‘농촌 가전’제품은 모두 108만 대, 15억3000만 위안(약 3060억원)에 달했다(중국가전협회 통계).

‘가전제품 농촌 보급’ 정책은 이제 쓰촨을 넘어 중국 전역으로 확대된다. 앞으로 4년간 실시될 이 정책으로 약 9200억 위안(약 184조원)의 내수진작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쓰촨이 농촌 내수시장 확대 모델을 제공한 것이다. 유명 경제학자인 쑨리젠(孫立堅) 푸단(復旦)대 교수는 “중국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뽑은 카드 중 하나가 농촌시장 개척”이라며 “이번 가전제품 농촌 보급 운동은 도시 중심의 내수시장을 농촌으로 확대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안푸칭은 어디서 돈을 벌어 가전제품을 샀을까? 역시 청두에서 시범 실시되고 있는 ‘농촌·도시 일체화 사업’에 해답이 있었다. 위안푸칭은 6월 마을에 새로 들어선 양계농장에 자신의 ‘토지경영권’을 양도했다. 5무(畝:약 1000평)의 토지를 농장에 임대하는 대신 연 4000위안을 받는 조건이었다. 자신은 그 양계농장의 직원으로 고용됐다. 그는 “지난해에는 부부가 죽어라 일해서 월 200위안을 벌었지만 지금은 1000위안 정도를 번다”며 활짝 웃었다.

양치저우(梁其洲) 청두시 금융공작판공실 부주임은 “청두는 지난해 7월 ‘도시·농촌 일체화 시범지구’로 선정돼 다양한 농촌 개혁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며 “이들 제도가 뿌리를 내리면서 농가 소득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촌 개혁으로 농가 소득을 높이고, 이들을 새로운 내수 확대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중국 정부의 농촌 개혁 구상이 쓰촨 땅에서 태동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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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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