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순 대장 이례적 벌금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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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선고를 앞둔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육사 입교 이래 지난 38년간 오로지 군과 국가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복무실적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다. 한시간여 뒤 그는 대장 군복을 그대로 입고 구속 상태에서 풀려났다. 군 사정설 논란까지 불러왔던 초유의 육군대장 구속수사가 일단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이례적 벌금형=재판부의 벌금형 선고는 이례적이다. 횡령액 1억원을 인정해 모두 추징한다고 선고하고도 막상 형량은 벌금형으로 최소화했다. 지난해 4월 국방회관 수입금 7000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던 金모 소장이 1심 군사재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것에 비하면 관대한 판결이다.

재판부는 벌금형 선고 사유로 횡령 공금의 대부분이 군 관계자 접대에 쓰인 점을 인정했다. 관행에 엄격한 처벌 잣대를 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申부사령관은 군내 최고계급인 대장 직위에서 구속돼 한순간에 명예를 잃었으며, 오랜 군생활 중 국가안보에 기여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나 실제로 재판부는 선고에서 申부사령관 수사를 둘러싼 군내 거부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수사가 튀어나오자 군 간부들은 관행을 문제삼아 대장 구속수사까지 벌인다며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일부 간부는 "국민의 정부 시절 만들어진 특정 군인맥에 대한 솎아내기 차원이 아닌가"라는 우려도 보였다. 이는 군 사정설과 청와대 개입설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부는 현역 대장에게 실형을 선고할 경우 군 사기와 군내 분위기에 미치는 파장을 감안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재판부는 횡령액 추징으로 관행이 더는 관행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벌금형을 선고해 처벌 수위는 최소화하는 선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재판이 기소 후 14일 만에 속전속결로 선고된 것도 申부사령관 구속사태를 둘러싼 군내 잡음과 논란에 신속하게 종지부를 찍어야겠다는 국방부 수뇌부의 의지가 작용했다는 말도 나온다.

반면 군 검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판결이 의아스럽다" "앞으로 어떻게 수사하라는 말이냐"는 말도 나온다.

◇처벌 수위 논란=서울지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군 형법과 일반 형법의 차이는 없다"며 "일반 형법에서 횡령액이 1억원 정도라면 형량이 징역 1년에서 1년6개월은 나온다"고 지적했다.

申부사령관이 2001년 10월 3군단장 재직 때 동부그룹에서 받은 1000만원을 무죄 선고한 것도 논란거리다. 현역 장군이 업체에서 1000만원을 사적으로 받아도 죄가 아니라는 군사법원의 판단을 여론이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향후 재판=조영길 국방부 장관은 이날부터 10일 이내 형량에 대한 감경권을 행사해 벌금 액수를 낮출 수 있다. '관할관 확인조치'다. 이후 7일 이내 군 검찰과 申부사령관 측은 항소 여부를 결정한다. 항소가 되면 2심인 고등군사법원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국방부가 이 기간 중 申부사령관을 보직해임하면 2심 재판은 민간 고등법원으로 넘어간다. 申부사령관은 보직해임과 동시에 민간인 신분이 되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이 사건의 사회적 파장이 큰 데다 이번주 중 장성급 인사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申부사령관의 거취를 신속히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중장 이상의 보직해임은 국방부 장관의 건의로 임면권자인 대통령이 결정한다.

채병건.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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