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인생] 美 '인간지놈 프로젝트' 참여 임선희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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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선희교수가 동아대 연구실에서 염색체 분리실험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동아대 화학생명과학부 임선희(林善姬.41.여)교수는 요즘 국내외 과학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미완의 세계로 남아있던 인간 염색체 19번을 완전히 해독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이 염색체에는 알츠하이머병.당뇨병 등 인간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가 밀집돼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결과는 여러 가지 난치병 연구에 획기적 전기가 될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이 연구 결과는 영국의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 4월호에 '인간의 19번 염색체의 염기서열 규명'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네이처는 스웨덴 노벨상위원회 위원들이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뽑을 때 가장 많이 참고할 정도로 권위 있는 순수 학술지.

네이처에 연구 결과물이 게재된 인물로는 찰스 다윈, 알버트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루이 파스퇴리, 제임스 왓슨 등 과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위인들이 수두룩하다.

임 교수는 19번 염색체를 새로운 염색체 분석법으로 완전히 규명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연구에는 미국 에너지성.스탠퍼드대 휴먼지놈팀 등 90여명의 연구진이 참가했으나 염색체내의 유전정보를 연결해주는 4개의 틈새(갭)를 메우지 못했었다.

그 틈새를 임 교수가 효모를 이용한 새로운 기법(TAR 클론닝)으로 19번 염색체의 규명되지 않았던 갭 내부 유전자를 분석하는데 성공했다.

그동안 지놈 프로젝트 연구에는 주로 대장균을 이용한 박테리아 인공염색체(BAC) 분석법이 많이 이용됐다.

이 4개의 갭에서는 언어능력과 관련된 유전자(SCK1)의 존재가 최초로 확인됐으며 친자확인 때 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전자 등이 잇따라 발견됐다.

그는 지난 2월에는 독자적으로 '인간 염색체 19번의 갭 메우는 방법'이라는 논문을 '지놈 리서치'에 게재했다.

그는 이 연구를 위해 학교 연구실에서 화학적 반응을 통해 염색체의 염기서열을 배열하는 지루한 작업을 수없이 했다.

임 교수는 "염색체를 분리하는 방법이 잘못돼도 연구는 성공할 수 없다"며 "선진국에서도 하지 못한 19번 염색체 해독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게돼 정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미국 에너지성.스탠퍼드대 휴먼지놈팀 등 90여명의 연구진과 함께 5.16.19번 염색체 해독 연구를 해오고 있다.

미국의 주도로 유전체 지도를 완성하는 '인간지놈 프로젝트'에 국내 교수로는 임 교수가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임 교수는 다른 연구원들이 90%까지 해독하면 마지막 10% 해독 작업을 맡고 있다. 더 세밀한 기술이 필요한 역할이다.

임 교수의 업적이 세상에 알려진 뒤 학교 홈페이지 등에 "교수처럼 한 분야에 묵묵히 매진하는 사람들이 있어 한국이 이 만큼이라도 발전했다"는 등의 격려와 찬사의 글이 쏟아졌다.

그는 열악한 연구환경에서 세계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아 세계 과학계의 놀라움은 더 컸다.

그는 연구실에서 선수.코치.감독 등 1인 3역을 한다.

대부분의 실험을 석.박사 연구원이 하는 국내외 명문 대학과는 달리 대부분의 실험을 직접해야 한다.

월급을 받고 뒷받침하는 연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연구비와 실험 시약 등도 미국.일본에서 많이 지원을 받는다.

그는 "지방대에선 교수가 실험도 잘해야 연구 성과물을 낼 수 있다"며 "재정 지원뿐 아니라 인력.장비 등 모든 면에서 열악하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초.중.고를 나온 그는 생명을 다루는 생물학이 좋아 대학(동아대)에서 이를 전공했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접한 '유전자'에 남다른 호기심을 보였다. 대학에서 생명의 신비에 계속 관심을 가진 그는 내친김에 석사(동아대)와 박사학위(일본 오사카대학)도 받았다. 유전체 연구는 석사과정 때부터 몰두했다.

"불완전하게 알고 있는 유전체에 대한 지도를 완성하고 싶은 욕구가 쏟더라고요. 유전자 정보를 얻게 되면 각종 질병을 고칠 수 있는 등 인류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는 "할 줄 아는 게 연구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연구 벌레'로 소문 나 있다.

오전 8시쯤 학교에 나와 밤 12시가 넘어서 퇴근하기 일쑤다. 결혼 뒤에도 이 생활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화학생명과학부 대학원생 김광섭(27)씨는 "연구에 쏟아 붓는 땀과 열정만큼은 젊은 우리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대단하다"고 전했다.

캠퍼스 커플로 만난 남편 추인선(42.동아대 수학과 졸업)씨는 미국 암연구소에서 의학 통계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중학교 3학년 쌍둥이 딸을 두고 있다.

정용백 기자 <chungyb@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 인간지놈 프로젝트란=인간의 생명현상을 결정짓는 DNA(디옥시리보핵산) 염기서열을 해독한 뒤 DNA 내 유전자를 확인, 인간유전자 지도를 작성하는 초대형 다국적 과학사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1988년 미국 국립보건원에 인간유전체 연구국이 신설됨으로써 구체적 연구사업 단계에 진입했다.

당시 미국 국립보건원과 에너지성은 2005년까지 프로젝트를 완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중국 등 6개국 과학자들이 참여한 국제컨소시엄인 인간지놈 프로젝트가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임선희 교수는 미국 암연구소 연구원 신분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미국의 생명공학 벤처기업인 셀레라 제노믹스사도 경쟁에 뛰어들어 염색체 해독작업에 가속도를 더했다.

국제컨소시엄과 셀레라 제노믹스사는 2003년 4월 "인간 지놈지도를 99% 완성했다"고 발표했다. 임선희 교수는 "인간지놈 프로젝트는 DNA내 염기서열이 어떻게 구성됐는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라며 "완성하지 못한 1%를 완전히 해독하는 작업이 아주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프라를 이용해 어떤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연구과제이다.

99% 유전자 지도가 완성됐지만 완벽에 가깝게 염기서열이 분석된 염색체는 24개 중 9개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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