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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북핵 중재 北·美 모두 환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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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스트롱 특사(左)가 21일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

'북한 문제'는 가깝게는 핵위기에서 멀리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넓고 크다. 그런데도 핵위기가 북한 문제의 전부같이 보이는 것은 미국이 핵문제 해결, 더 정확히는 북한의 핵포기를 북한 문제 해결의 대전제로 세워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문제의 그늘에서 평양을 드나들면서 '핵 이후'를 시야에 두고 묵묵히 활동하는 사람이 있다. 모리스 스트롱. 75세의 캐나다인.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북한 특사다. 유엔 직원 50명이 북한에서 여러 가지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도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스트롱 박사는 지난주 세번째로 평양을 방문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백남순 외무상, 임경민 무역상, 최수헌 외무성 부상, 이찬복 판문점 인민군 대표부 대표, 홍명렬 농업성 부상을 만나고 주말에 서울에 와서 한국 정부에 북한 방문에 관해 설명을 했다. 그는 같은 내용의 브리핑을 위해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떠났다. 베이징에서 도쿄(東京).모스크바.브뤼셀(EU).제네바를 거쳐 워싱턴으로 간다. 유엔은 북한에 무슨 '볼일'이 있는가. 본사 김영희 대기자가 이틀 동안 스트롱 박사를 세번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김영희=북한 방문의 목적은 뭡니까.

스트롱=핵위기 같은 당장의 문제뿐 아니라 휴전협정 이래 반세기 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북한과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포괄적인 해결을 지원하기 위해서요.

김=북한은 핵문제의 유엔 안보리 상정에 반대하는데요.

스트롱=핵문제의 안보리 상정에는 반대해도 유엔 사무총장의 중재역할은 환영해요. 유엔의 입장에서도 한국 문제는 유엔의 직접적인 관심사일 수밖에 없어요. 한국전쟁 때 유엔 회원국들이 안보리 결의에 따라 참전했고 비무장지대 남쪽에는 지금도 유엔 깃발이 휘날리고 있지 않습니까.

김=미국은 유엔의 역할을 참견이라고 배척하는 것 아닙니까.

스트롱=그 반대죠. 지난해 내가 북한을 방문한 것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요청에 따른 겁니다. 그는 내가 북한으로 떠나기 전에 미국의 입장을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나의 평양행을 격려했어요. 나도 북한 방문의 결과를 파월과 제임스 켈리 국무차관보에게 자세히 설명했고요. 미국을 포함한 당사국들은 처음에는 유엔이 6자회담을 너무 앞질러 가는 게 아닌가 경계했어요.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6자회담과 '핵 이후'의 한반도 평화 정착을 돕는 겁니다.

김=북한이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까.

스트롱=지난해 갔을 때는 미국이 공격을 해온다고 모두 긴장하고, 미국의 공격에 대비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한결 안정된(relaxed) 분위기였어요. 북한사람들의 개방적인 자세에서 작지만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양에서 본 북한사람들은 조금 개선된 생활을 누리고 있었어요. 북한 사회에 등장한 시장도 그냥 상징적인 시장이 아닙니다. 바나나 같은 열대지방 과일과 육류도 팔고 있었습니다.

김=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도 있습니까.

스트롱=물론이죠. 북한문제 해결에 가장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시기에 아난 총장이 북한을 방문할 겁니다.

김=6자회담을 확대하여 유엔과 유럽연합(EU) 등을 참여시킬 필요가 있습니까.

스트롱=유엔은 6자회담을 정치적으로 돕고 있지만 북한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에는 북한을 국제사회에 참여시키는 경제적인 패키지가 필요합니다. 경제제재를 풀고, 투자유치와 가스 파이프라인 설치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같은 거죠. 북한문제 해결의 어느 단계에 가면 유엔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는 건 이라크 사태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6자회담 참석자를 늘린다고 문제해결이 빨라지지는 않습니다.

김=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과 6자회담은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스트롱=핵문제에만 매달리지 말고 한반도의 먼 장래, 통일 이후까지 내다보는 비전을 갖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해요. 가령 식량난으로 북한 어린이들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 것도 길게 보면 남한사람들의 문제 아닙니까.

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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