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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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가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법원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사유를 밝혔다. 건평씨도 수감되면서 “혐의 사실 일부를 인정한다”고 말했다. 당사자와 법원이 피의 사실 일부를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어제 사저에서 현재로선 국민에게 사과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은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위상이나 상징성, 국민에 대한 도리 모두를 외면한 처사라고 본다.

그는 “전직 대통령의 도리가 있겠지만, 형님·동생의 도리도 있다”고 설명했으나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은 건평씨 등 측근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자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사정기관들이 칼을 들고 저와 가까운 사람들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며 불만을 내비쳤다. 형과 측근 말만 믿고 검찰 수사를 표적사정으로 폄하하고, 자신이 탄압받고 있다는 식으로 국민을 호도한 것이다. 대통령 재직 시 건평씨가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으로부터 사장직 연임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을 때에도 “힘없는 시골 사람을 사람들이 괴롭힌다”며 형을 감싸 안아 구설에 올랐었다.

임기 내내 도덕성과 청렴을 내세웠던 노 정권으로선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며, 노 전 대통령은 집에서 조용히 들어앉아 있으면 좋겠다”며 반성과 자숙을 촉구할 정도다.

사정이 이렇게 귀결된 이상 “형제간의 도리” 운운하며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혐의사실의 진위와 관계없이 자신의 형이 수사 대상이 됐다는 사실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고 국민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올바른 도리라고 본다. 형제애가 유별나다고 알려진 그로서는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이 클 것이다. 하지만 실정법 위반으로 이어진 건평씨의 위세와 권력이 대통령이었던 자신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주변 관리에 소홀했음을 솔직하게 반성하고 사과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