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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부패와 카오스이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폭포수가 바닥에 부딪칠 때 나란히 솟구치는 두개의 물방울이 있다면 이들은 폭포수 꼭대기에서도 나란히 흘렀을까.
베이징(北京) 하늘위 한 나비의 날갯짓으로 일어난 가벼운 바람이 다음달 뉴욕의 폭풍으로 변할 수 있을까.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일부 자연과학자들의.카오스(혼돈)이론'은 이러한 의문들을 예시하면서 일상적 자연현상의 무수한 무질서 속에도 숨겨진 연관성이 내재한다고 주장한다.
오늘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부패상황은 바로 혼돈,카오스다.끈질기게 재연되고 있는 이 혼돈사태에 카오스이론을 적용한다면 이속에서 어떤 일관된 패턴을 발견할 것인가..법대로 살지 않는 한국인들의 고질적 병폐'가 그 해답이라고 한다면 너무 평범한 얘기일까.
미국의 존 F 케네디대통령이 아우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으로 기용한 것을 계기로 의회는 각급 공직의 장은 가족을 같은 기관내에 임용하지 못하게 하는 반(反)네포티즘(족벌주의)법을 마련했다.미국이 한번 만들어진 법은 엄정하게 준수 되는 나라임을 증명하는 사례는 허다하다.
지난해 5월 유타주(州) 한 고등법원 여판사의 은퇴도 그 예다.베티 플레처라는 이름의 이 판사는 아들의 동일 관내 판사임*명에 대한 네포티즘 지적을 받고 평생 봉직해온 법관자리에서 순순히 물러났다.
최근 플로리다주 한 작은 마을의 경찰서장이 주정부 윤리위원회에 제출한 유권해석의 처리도 흥미롭다.워낙 좁은 바닥이라 한 행정직에 앉힐 적임자 찾기가 어려운 판이니 자신의 양녀를 채용해도 되겠느냐고 질의한데 대해.안된다'는게 응답이 었다.
대통령도 법적용에 예외가 아니다.클린턴대통령의 집권초 부인 힐러리여사는 의기가 등등했다.6명의 현직 장관과 수명의 백악관참모들로 구성된 특별대책반을 지휘,의료제도개선방안을 마련하는등국정참여에 적극적이었다.힐러리의 정부내 신분이 무엇이냐는 의문들이 제기됐다.미국은 이 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갔다.퍼스트 레이디는 대통령 참모에 해당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백악관이 주장했지만 법원은 그녀가 관리나 정부 고용직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따라서 힐러리가 시민자격으로 지휘하는 의료제도개선 특별대책반은 정부의 공식기구라기보다 임의 자문조직에 머물렀다.그렇지않았다면 즉각 반네포티즘법의 위반사태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북한 최고 핵심세력의 한사람인 황장엽(黃長燁)의 망명사태가 터짐으로써 한보(韓寶)사태가 다소 뒷전으로 밀려나는 건 아닐까하는 진단도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사실은 다르다.두 사태가 지니는 극도의 혼돈과 의외성은 우리가 살아가야 하 는 사회의 철저한 무질서와 부패상을 더욱 극명하게 부각시킬 뿐이다.
기업부도로 불거져 나온 한보사태는 정치인의 부패문제로,권력 핵심과 주변인물,심지어 대통령 아들까지 포함하는 네포티즘 문제로 흉악스러운 형체변화를 진행시키고 있다.기왕에 우리사회에 팽배한 정치염증과 권위에 대한 냉소주의는 최악의 상 태로 치닫고있다. 냉소주의는 사회를 망친다.냉소주의가 유발하는 불길한 행태중 하나는 일반의 무력감이다.수억원을 .조건없는 떡값'이라고항변하고,수사당*국 소환도 서슴없이 불응하는 거물들 앞에서 소시민들은 더 왜소해진다.공개적 비판은 숨기고 고개숙인채 편안한 사람들끼리만 소통할 뿐이다.무기력현상은 공직자도 마찬가지다..정부.정치인=무능.기만'이라는 인식의 확대로 정책수행기능이 사실상 마비상태로 흐른다.
미국 공무원은 20달러,의원은 50달러 이상의 선물수수가 안된다.공무관련 금품이면 뇌물수수로 처리된다.수뢰액의 3배에 달하는 벌금과 최고 징역15년.공직박탈등 처벌이 가혹하다.법이 엄정하게 준수되고 집행되는 것이다.
혼돈에 대한 우리의 대처는 법대로 살아가는 사회의 실현 뿐이다.한보사태는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져 법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증명시켜야 한다.
(미주총국장) 한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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