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거시경제협의회 ‘워룸’ 수준 격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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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제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정부가 ‘거시경제협의회’를 일종의 ‘워룸(War Room:전시작전실)’으로 삼아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지휘하기로 했다. 그동안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 원로와 전문가들은 경제위기를 총괄할 워룸 같은 통합대책기구를 만들라고 제안해 왔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1일 “앞으로 거시경제협의회에서 금융·기업 구조조정의 큰 그림을 그리고, 이에 따른 세부 정책을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한국은행이 집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거시경제협의회는 소위 ‘청와대 서별관 회의’로 알려져 있는 회의체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과 전광우 금융위원장,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이 고정 멤버다. 다른 경제부처 장관들과 수석 비서관들은 필요할 때 합류한다. 매주 화요일 청와대 서별관에서 오찬을 겸해 열리며, 회의는 강 장관이 주재하고 있다.

기존 회의체인 거시경제협의회가 워룸 수준으로 격상된 발단은 지난달 26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경제상황점검회의에서였다. 이 대통령이 미국·남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소집한 이 회의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재정부·금융위·한은 등 부처 간 경계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인데 정부 대책이 일사불란하지 않은 데 따른 질책이었다.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를 제대로 세우라는 여론도 작용했다. 정부가 금융·실물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제 집행과정에서 효과가 반감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위의 10조원 규모 채권시장안정펀드 조성이 시장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정작 돈을 대야 할 한은과의 협의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시장이 간파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 내에선 거시경제협의회를 적극 활용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또 다른 정례 회의체인 위기관리대책회의는 고용·물가를 중심으로 부처 간에 조율된 의제를 다루는 회의여서 상대적으로 긴박감이 떨어진다는 점이 고려됐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에는 결국 돈이 집행돼야 한다는 점도 거시경제협의회에 무게가 실린 이유다. 정부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실제 집행하는 금융위와 재정을 책임진 재정부, 돈줄을 쥐고 있는 한은의 팀워크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세 곳의 기관장이 참여하는 거시경제협의회가 워룸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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