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일류대학病과 언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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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해마다 홍역처럼 치르는 대학입시가 올해도 이제 거의 막바지에이르고 있다.우리나라의 치열한 입시 전쟁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고,한국 부모들의 과열화된 교육열은 국제화의 물결을 타고 외국 대학에까지 진출하고 있다.물론 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 하겠다는 순수한 의미의 교육열은 권장했으면 했지 막을일은 아니다.그러나 우리나라의 지나친 대학입시 경쟁은 이러한 순수한 의미의 교육열보다 이기적인.자식출세욕'에 기인하고 있고, 따라서 그 부작용도 크다는 것 이 문제다. 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일류대학병'의 근본적 원인은 간판 위주의 학벌주의와 출신대학 학연(學緣)으로 뭉치는 인간관계 때문이다.사회생활을 하면서 출신대학 간판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는 부모가 자기 자식을 소위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빚을 내서라도 족집게 과외를 시키고,내신성적을 높이기 위해 눈치껏 교사들에게 촌지를 갖다 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그러니 역대 정권이.교육개혁'의기치아래 대학입시제도를 수없이 바꾸 어 보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육의 병폐를 고칠 진정한 교육개혁은 제도개선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물론 입시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면 그 증상은 나아질 것이고,복수지원 허용과 내신제 강화등 최근의 대입제도 개선방안은 많은 시행착오가 있 었지만 그런대로 방향은 올바로 잡은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대입제도의 개선만으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바라는 것은 마치 폐결핵 환자에게기침약만 주면서 완치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극심한 입시경쟁은사회적인 부조리의 산물이고,이를 고 치기 위해선 교육제도 개선과 더불어 사회적인 관행과 의식의 개혁이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적인 의식을 바꿀 수 있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대학입시에 관한 주요 언론의 보도태도는 오늘날까지도 구태(舊態)에서 벗어나지 못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 면이 있다. 현행 입시제도의 부작용은 여러가지지만,그 중에서도 교육적으로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다양화된 미래사회에 대비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고 획일적인 인간상을 강요한다는 점이다.그런데 언론은 교육의 다양화에 기여하기는 커녕 오히 려 대학이나 학생을 수능점수별로 일률적으로 서열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예를 들어 수능시험이 끝나면 언론사마다 경쟁적으로 발표하는 대학별 예상 합격점수를 보자.이제는 대학마다 과목별 가중치가 달라 수능시험의 총점이 같아도 지원대학에 따라 얻는 점수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이런 발표에서는 예외없이 총점 순 으로 대학 학과들이 서열화돼 있다.그것도 몇몇 사설 입시학원의 예상치를 많은 신문이 그대로 받아쓰기 때문에 마치 그 자료가 공신력 있는 듯 보이게 한다.그러나 과거 몇년간의 경험을 보면 실제 결과는 이들 예상 합격선과 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이렇게 신빙성 없는 자료를 몇점 단위로 쪼개 보도할 필요가 있을까.그것도 총점순으로 나열해 전국 대학의 학과에 등수를 매기는 식으로말이다. 본고사 실시후의 보도 또한 소위 명문대 일색이다.명문대의 논술시험 문제가 다른 대학의 모형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많은 지면을 할애해 그 문제들을 소개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오히려 신문에 언급 안된.일반'대학에 지원한 학생들에게 소외감만 심어주는 일이 될 뿐이다. 수능시험이나 대학 수석합격자에 대한 기사도 무의미하기는 마찬가지다.일류대 합격이 최종 목표가 돼버린 이 땅을 제외하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 시험 하나 잘 보았다고 대학입학생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일이 있는가. 모름지기 교육이란 하나의 잣대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일이 아니다.특히 미래의 지식산업 사회에서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시로 그 잣대가 바뀔 수밖에 없다.현재의 입시제도와 사회풍토 아래에서 과연 우리가 빌삐 게이츠를 키울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지금 쓰는 잣대에서 조금 뒤진다고 개인의 존엄성과 자신감마저빼앗지는 말아야 한다. 吳 世 正 <서울대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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