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보사태의 해결 방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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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보사태가 우리를 몰고 간 위기는 세가지 수준에서 살펴볼 수있다.첫째로 가장 낮은 수준에선 김영삼(金泳三)정권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국민들은 김영삼정권은 과거정권보다 깨끗한 정권이란 이미지를 여태까지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한보 사태는 이러한이미지를 순식간에 시커멓게 만들어 놓았다.깨끗한 정치를 위해 金대통령이 추진해 온 여러 개혁정책이 유명무실한 정책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국민들은 갖게 됐다.임기말의 金대통령이 이번 사태로 통치능력을 잃지 않을까 걱정 스럽다. 둘째로 이번 사태는 나라를 정치.경제적 위기속으로 몰아넣고 있다.국민들은 국가기관과 정치에 대해 극도의 불신감을 가지게 됐다.성역없는 수사를 하라는 金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불신감을 가지고 있고,한보사태에 대한 검찰수사보다는 소문을 더 믿고 있다.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게 사는 많은 국민들이 좌절하고 있고,불황과 인플레가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근로의욕을 잃고 있다.김영삼정권의 위기가 한국의 정치.경제체제 자체에 대한 위기로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셋째로 한보사태는 국제적으로 한국의 이미지를 흐려놓고 있다.한국은 아직도 정경유착이 강한 부패공화국이란 이미지를 갖게 됐고,한국의 국제적 신용도도 하락했다.지구화시대에 이러한 이미지를 가지고 한국이 선진제국과 경제적으로 경쟁할 수 있을지 매우걱정된다. 현재 정권.국민.국가의 장래에 이처럼 심한 손상을 입히고 있는 한보사태 같은 것이 재발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선 이러한 사태가 일어난 원인에 대한 진단과 이에 근거한 정치개혁이 필요할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돼야할 일이다.이번 사태는 한국정치에 견제와 균형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웅변해주고 있고,정치가들과 국민들은 앞으로 이 문제와 씨름해야 한다.金대통령은 퇴임 전에라도 현재와 같은 일권(一權)체제가 아닌 명실상부한 삼권분립(三權分立)체제를 수립하고,정치인들의 모든 자금수수를 국민들이 감시할 수있는 방향으로의 개혁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金대통령은 현사태에 대한 장기적 대책을 염두에 두면서 당장은위에 언급한 세가지 수준의 위기를 해소하는데 진력해야 할 것이다.金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때와 마찬가지로 핵심을 찌르는 신속한 수사를 검찰에 촉구해야 할 것이다.한보사태 배후의 핵심권력이 누군지 하루 빨리 밝혀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金대통령이 이러한 책임을 완수했다고 해도 현정권을 위기로부터 구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언론이 현재 요구하고 있는 바와 같이 金대통령이 마속(馬 )을 읍참(泣斬)한다 해도 국민들로부터 박수보다는 비난세례를 받을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수사가 된다면 金대통령은 나라의 국내외적 위기를 상당히 해소시킬 수 있다.이는 대통령의 최소한의 임무다. 이번 수사의 결과 현정권의 치부가 드러난다면 그것이 국민들의 정권 지지율은 하락시켜도 체제지지율은 상승시킬 것이고 국제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이번 사건은 은폐하거나 오도하기엔 국민들의 분노가 너무 크다.현정권이 빨리 사 태의 전모를 밝히고 국민들에게 사죄한다면 국민들의 정권에 대한 불신이 불식되지는 못해도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검찰은 몇몇 은행장들을 구속 수사하고 있고,여당은 야당에 대해 맞불전술을 구사하고 있다.은행장들도,야당 정치인들도 한보로부터 돈을 받았겠지만 그들의 호의로 한보가 5조원의 대출을 받았다고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한보사태는 현정권이 최종적인 책임자다.현정권이 이와같이 명약관화한 사실을 피하려고 한다면 정권의 위기뿐만 아니라 나라의 위기도 점점 깊어질 것이다.金대통령의 결단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이정복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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