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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원 불안에 지갑 닫아 … “보는 사람 많지만 계산대는 한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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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에서도 소득수준 최상위권으로 꼽히는 캘리포니아주 북부 실리콘밸리. 전 세계 정보기술(IT) 경기의 온도계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경기 수은주는 영하로 내려가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10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한 시간쯤 달리면 새너제이에 닿는다. 이곳 외곽의 웨스트필드 밸리페어는 메이시·노드스톰 백화점과 루이뷔통·애플스토어 같은 대형 매장 250개가 몰려 있는 실리콘밸리의 쇼핑 메카다. 추수감사절(11월 27일) 직전의 마지막 휴일인 지난달 23일 이곳을 들러보니 주차할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북적였다. ‘역시 부자동네는 다르네’ 하면서 매장을 잠시 쏘다녀 봤더니 ‘외화내빈(外華內貧)’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할인 홍수=매장마다 반값 이하의 할인행사가 넘쳤다. 갭·게스 같은 대중 브랜드는 물론이고 할인을 잘 하지 않는다는 코치도 ‘30~50% 세일’을 내걸었다. 새너제이 남쪽 길로이에 있는 코치 매장 직원 패트리샤 루이스는 “보통 추수감사절 이튿날부터 할인을 시작하는데 올해엔 물건이 너무 안 팔려 세일 기간을 한 주 앞당겼다”고 말했다. 그 매장에는 물건 구경하는 이는 많은데 계산대는 한산했다.

미국의 대규모 할인행사는 ‘블랙 프라이데이(검은 금요일)’인 지난달 28일 시작하는 게 관례였다. 이로부터 연말까지 연간 매출의 절반 가까이 올릴 만큼 물건이 잘 팔려, 매장이 ‘레드(적자)’에서 ‘블랙(흑자)’으로 돌아선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이름을 떼야 할 판이다. 미국 내 소비는 3분기에 0.5% 줄어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미 상무부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10월 소비지출 통계를 봐도 지출이 1% 줄어 7년 만에 낙폭이 가장 컸다. 전미소매업체연합(NRF)은 오는 금~일요일 사흘간 미국 내 쇼핑객이 1억2800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700만 명 줄 것으로 예측했다.

대형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등 내구재 소비 시장은 이미 얼어붙었다. GM의 지난달 판매는 17만 대로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재고가 80만 대에 달해 이달 들어 ‘레드태그(빨간딱지) 세일’을 시작했다. 시보레의 3만 달러짜리 실버라도는 2만2000달러에 살 수 있다. 4만5000달러짜리 GMC의 유콘 트럭은 9000달러를 깎아 준다. 포드 역시 ‘직원가 할인 이벤트’로 맞서고 있다. 닛산·현대는 36개월 무이자 할부를 내걸었다. 실리콘밸리의 시보레 딜러인 로버트 먼로는 “아무리 깎아줘도 소비자 반응이 신통찮다”고 털어놨다.


전자제품 매장도 마찬가지다. 최근 파산한 미국 2위 전자제품 양판점 서킷시티를 찾았다. 새너제이 옆 레드우드시티의 매장을 가 보니 모든 제품에 할인 딱지를 붙였지만 손님이 거의 없었다. 10분 거리에 위치한 1위 업체 베스트바이에서는 파란 유니폼을 입은 직원에게 요청하면 제품 가격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최저가에 맞춰 주겠다는 ‘블루 유니폼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또 499달러 이상 제품은 최장 18개월 무이자로 판다. 미국 최대 백화점 체인인 시어즈는 가전이나 장난감 등에 대해 고객이 나중에 돈을 낼 때 제품을 인도하는 예약 판매를 19년 만에 부활했다.

◆감원 한파=이런 불경기는 실리콘밸리의 간판 IT 기업들이 감원과 임금 삭감에 나서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업체인 구글은 주가가 1년 만에 700달러에서 300달러로 주저앉을 정도로 실적이 나빠지자 계약직을 중심으로 최대 1만 명 감원에 들어갔다고 영국 더 타임스는 전했다. 3분기에 18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본 선마이크로시스템스는 전체 직원의 18%인 6000명을 줄인다고 발표했다. 고급인력 리크루트 업체인 챌린저·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는 “구글·HP·선·야후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경기침체가 시작된 뒤 14만 명가량을 감원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새너제이 옆 팰러앨토의 본사에서 만난 스테이시 부에스테 HP 부사장은 “이곳 실리콘밸리는 뉴욕(금융)·디트로이트(자동차) 정도는 아니지만 내년부터 실적 부진이 본격화하면 구조조정 한파가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김창우 기자


◆실리콘밸리=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일대의 첨단 기술 연구 단지. 이베이와 선의 본사가 있는 새너제이, 스탠퍼드대와 HP가 있는 팰러앨토, 오라클의 레드우드시티, 구글의 마운틴뷰, 야후가 자리한 서니베일 등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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