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치장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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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장의 역사
베아트리스 퐁타넬 지음, 김보현 옮김
김영사, 155쪽, 1만2900원

욕망은 인간을 얼마나 무모하게 만드는지…. 정력에 좋다면 보기에도 징그러운 지렁이를 삼키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며, 아름다워지겠다며 사람 태반으로 만든 화장품까지 얼굴에 바른다. 욕망이 아니라면 감히 상상도 못할 대담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도 이런 광기가 여전한데 하물며 비과학과 비이성이 판치던 과거에는 어땠을까.

『치장의 역사』는 욕망에 눈이 멀어, 때론 남자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려고 자기 몸을 혹사해온 여자들 얘기다. 화장술 등 몸을 치장하는 방식이 고대부터 현대까지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는 미(美)의 역사서인 동시에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우매함을 폭로하는 책이기도 하다.

얼굴에 바르면 피부가 쓰려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창백한 안색을 만들기 위해 수세기 동안 기꺼이 발랐던 수은 화장품은 약과다. 책 속에 등장하는 프랑스 여성들은 도마뱀 배설물이나 잘게 썬 붉은 달팽이, 심지어 자신의 변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감히 이들을 어리석다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현대여성들도 이런 우매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잦은 염색과 퍼머로 머리가 빠지면, 다시 탈모 방지에 골몰하는 요즘 여성들처럼 옛날 여자들도 추앙받는 금발을 만들기 위해 머리카락에 오물을 발라 머리카락이 빠졌다. 그러고는 모발을 다시 자라게 하는 방법에 몰두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과거 여성들이 식초와 함께 담가둔 거머리와 태운 고슴도치 껍질을 벗겨낸 가루를 쓴 데 비해 요즘은 탈모방지 샴푸를 사용한다는 차이뿐이다.

이 책의 재미는 이처럼 우리가 몰랐던 사실, 예를 들어 노스트라다무스가 고래 정액과 박쥐 피로 만든 ‘마법의 화장품’ 등에 대해 알 수 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화장품과 머리 모양, 목욕 등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곁들여진, 아름다운 여인들이 담긴 명화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그림 속의 화려하고 우아한 여인네들의 자태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름답다기보다 안쓰럽게 느껴진다. 머리를 부풀려 세우고 꽃이나 깃털로 장식한 여인의 머리가 실은 이가 들끓는 불결한 장소였으며, 칠흑 같은 매혹적인 흑발이 자기 변을 말려서 빻은 가루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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