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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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
사사키 다케시 외 지음, 윤철규 옮김
이다미디어,840쪽, 2만7000원

에리히 프롬의 『자유부터의 도피』에서 르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이르는 푸짐한 뷔페 상이 이 책이다. 눈요기만으로도 배부를 참이다. 고전 219권이 망라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장 널리 알려졌으면서도 가장 읽히지 않는 책’이라는 딱딱한 고전을 떠먹기 좋은 유동식으로 바꿔 요리한 ‘신개념 상차림’이다.

방식은 이렇다. 책이 쓰여질 당시의 상황과 저자의 다른 저작에 대한 간추린 소개, 고전의 핵심 내용에 대한 설명을 살갑게 곁들였다. 필자도 해당 분야의 대표성을 가진 이들. 도쿄대 총장인 사사키 다케시를 포함한 일본 학계의 거물급 학자 84명을 포진시켰다. 이런 정성이 이 책을 흔한 ‘고전 다이제스트’유(流)와 구분하게 만드는 요소다.

이 책이 노리는 것은 일반교양 쪽. 굳이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지식대중들의 목마름을 겨냥한 것이다. 그걸 이 책 기획자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절대지식”이라고 힘줘 소개한다. 하지만 실제는 매우 친절해서 이를테면 20세기 중반의 미국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즈의『파워 엘리트』에 대한 소개를 읽어보자.

밀즈는 1970년대 이후 국내에서 두루 읽힌 사람이지만, 『교양으로 읽어야할 절대지식』은 이 책을 “아카데미즘(대학) 내부로부터 솟아나온 미국사회 고발”이라고 규정한다. 밀즈가 마르크스와 또 다른 의미에서 좌파학자라는 기본지식도 전해준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로는『들어라, 양키들아』등이 있다는 정보와 함께 『파워 엘리트』를 조근조근 설명해준다. 즉 2차대전 이후 미국을 움직여온 정치·군사·경제의 군산(軍産)복합체의 구조를 실증적으로 규명한 것이 이 책이라는 정보다. 이런 설명 뒤에 국내에서 발간된 번역본을 귀띔해준 것도 이 책이 품을 들였음을 확인케 해준다.

영역은 모두 10개. 정치·경제·법사상·철학사상·여성론·종교·교육·역사·카운터컬처·인생론 등으로 구분했다. 눈여겨 볼 점은 선정된 책들이 매우 촘촘하다는 점이다.『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한스 켈젠),『고대법』(헨리 제임스 서머 메인),『인공 두뇌학』(로버트 워너),『우주선 지구호 조정 매뉴얼』( 리처드 벅민스터 퓰러) ….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이 아니라면, 자주 들어본 책이거나 저자는 아닐 듯싶다.

역시 일본 학계의 서양 이해는 한국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는 대목이다. 이러저런 이유 때문인지 이 책 맨 앞에 ‘추천의 글’을 쓴 송자 전 연세대 총장은 이렇게 말한다. “고전 한 권과 이 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읽을 것이다.” “ 주례사지만, 좀 과했다”싶은 마음인데, 알고보니 개운치 않은 대목 하나를 언급해야겠다.

‘절대지식’이란 책 제목.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200종의 책을 ‘흔들림 없는 인류사의 명저’라는 식으로 못박는 것은 분명 허풍이다. 책 구성부터가 서구문명권 이외의 책들은 단 한 권도 없다. 또 서구에서는 자기들 지식 계보에서 정전(正典)으로 분류돼온 텍스트들의 지적 권위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더욱 그렇다. 그게 1968년 혁명 이후의 일이다.

‘절대지식’이라는 제목은 국내 출판사의 과대 포장. 원서 제목은 ‘세계고전명저 해설’정도다. 따라서 상대적이고, 지역적인(서구적인) 지식의 하나인 서구 고전에 절대지식의 문패를 붙여준 것은 분명 ‘오버’로 보인다. 그런저런 한계에도 안정된 번역과 들인 품 때문에 추천하기에는 모자림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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