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 노다지라는 DJ, 가서 사는 게 최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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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04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29일 중앙SUNDAY 전영기 편집국장과 인터뷰하고 있다. ‘극세척도’라고 직접 쓴 휘호는 내년엔 ‘호연지기’로 바뀐다. 벽에 걸린 사진은 1954년 3대 국회 첫 등원 때 연설 모습.

-나라가 위기다. 10년 전 외환위기를 경험하셨는데 지금 위기를 어떻게 보는지.
“10년 전에는 외환위기가 올 거라고 우리 경제학자나 관리 그 누구도 예측을 못 했다. 어떻게 전문가들이 그렇게 몰랐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 지금은 온 세계에 한꺼번에 위기가 닥쳤다.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진 않는다. 최소한 내년은 넘어갈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미국 대공황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

전·현직 대통령에 독설 쏟은 YS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나.
“대통령과 정부·국민 모두가 어떻게든 극복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나가는 길밖에 없다.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상황을 좀 안이하게 보는 것 같다는 점이다. 지금은 절대 그럴 때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가 30% 안팎이다.
“대통령이 너무 독주한다, 옆사람 말을 안 듣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자기를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과 대화를 좀 해야 한다. 그 사람들이 전부 등을 돌렸다. 내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니는데 이 대통령 얘기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 아예 관심이 없는 거다. 어제 저녁에도 전직 장관 30여 명과 저녁을 먹었는데 한~마디도 이 대통령의 얘기를 안 하는 거다. 다들 이 대통령을 밀었던 사람들인데.”

-왜 그럴까.
“일부러 얘길 안 하는 것 같다. 운동하러 나가도 예전엔 대통령이 잘해 주길 바란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단 한 명도 그런 얘기를 안 한다. 참 놀랄 일이야.”

-대통령의 정치 경험이 부족한 게 문젠가.
“글쎄… 문제는…. (한참을 뜸들이다가) 정치는 법 이전에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카리스마가 부족한가.
“제가 그런 얘긴 안 했다.”

-카리스마는 어떻게 해야 생기나.
“억지로 생기는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지.”

YS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화제를 바꿔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대해 물었다. YS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돈 주고 평화 산다’는 논리 말 안돼
-난국 극복을 위해 DJ와 힘을 모을 생각은 없나.
“김대중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제일 좋은 방법은 이북에 보내는 것이다. 이북이 노다지 나오는 곳,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북에 가서 살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김정일에게 5억 달러 갖다 주고 구걸해 회담을 했지 않나. 그 뒤에 김대중·노무현 둘이 14조원 갖다 주고 솔직히 우리가 얻은 게 뭐냐. 전부 이북의 이익을 위한 것 아니었나. 그런데 이북이 이제 와서 사람 못 들어온다고 하고…. 참 애들 말마따나 웃기는 얘기지.”

-DJ 논리는 돈을 줘서라도 한반도 평화를 사야 한다는 건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북은 한국과 전쟁해 이길 수 없다. 미국이 여기 있는 한 절대 못 이긴다. 외환위기 때도 김대중이 협력했으면 극복 가능했다. 노동법 개정도 그렇고, 한국은행법도 그렇고. 기아자동차 문제를 크게 문제 삼으려 했을 때도 그 사람이 기아에 가서 ‘내가 사수하겠다, 국민 기업이다’며 못하게 했다. 외환위기에 책임을 지라면 김대중이 최소한 60%는 져야 한다.”

-93년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고 했는데.
“오늘 처음 말하는 건데 그때 그 말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원리대로 하면 옳은 말 같지만 남북은 전쟁을 했던 사이고 이후에도 계속 경쟁관계에 있다.”

-요즘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가 한창이다.
“나는 노무현이 깨끗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맨 자기 변명 아닌교. 잘못한 게 있으면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김대중은 1년 반 동안 내 뒷조사를 얼마나 해댔는지. 철두철미한 보복이죠.”

-그래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점 한 가지씩을 꼽으라면.
“두 사람 다 장점을 생각해 본 적 없다. 아, 장점이 하나 있긴 하다. 김대중 거짓말 잘하는 거. 노무현은 평하고 싶지 않다. 내가 픽업해 정치시켰는데….”

-2004년 클린턴 도서관 개관 때도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들이 한자리에 모이니까 국민이 아주 편안해했다. 우리도 그런 게 필요하지 않나.
“그런데 전두환과 노태우가 법적으로 대통령인가. 대통령 자격이 박탈된 사람들이다. 광주 사람들 죽이고 몇천억원 걷어들인 것 가지고 대법원에서 결정해 감옥에 가지 않았나. 내가 한 게 아니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하지 않도록 돼 있다.”

-그러고 보면 전직 대통령 모두를 안 좋아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이승만 박사는 건국 대통령으로 인정해야 할 거다. 남한 정부 수립이 조금만 늦었어도 상당한 혼란이 있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18년을 했는데 쿠데타를 했지 않나. 나는 어떤 이유로도 쿠데타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본다. 마지막 죽음도 비참했고. 그런데 국민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경호실에 있던 전두환이 또 쿠데타를 해 정권을 잡아 박정희 미화하는 일만 해서 그런 거다.”

-1975년 박 전 대통령과 독대했을 때 나눈 얘기를 무덤까지 가져가겠다고 했었는데.
“야당 총재 때 정상회담 하자고 해서 청와대에 갔는데, 오전 10시쯤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먼저 내가 부인이 총에 맞아 돌아가신 걸 위로하는 말을 했어요. 그때 창밖의 나무 위에 새가 와서 앉더라고. 그가 이렇게 말하는 거야. ‘총재님 저걸 보십시오. 제가 저 새와 같은 신세입니다’라고. 그러더니 바지 오른쪽 앞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데 내가 정이 많아서, 대통령 선거해야 한다고 날짜까지 정해 갔는데 심하게 얘길 못 하겠더라. 그때 그가 ‘난 물러납니다. 선거합니다’ 그러면서 이 얘기는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해 약속을 지켰는데 결국 박정희가 그것도 속여 먹었다.”
 
“북한, 기아 때문에 멸망할 것”
-김정일 국방위원장 관련 정보는 좀 듣나.
“우리 국정원이 참 한심하다. 내가 5년간 봐서 아는데 미국이 주는 정보가 가장 정확하다. 그런데 김성호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 가서 김정일이 이빨 닦는 것까지 알고 있다고 말했는데, 세상에 우리 집에서도 내가 이빨 언제 닦는지 아는 사람이 한두 명에 불과한데 그런 거짓말을. 진짜 한심하다.”

-거짓말인가, 실언인가.
“아주 거짓말이지. 그 정도 알고 있으면 이북을 전부 알고 있다는 얘긴데.”

-이 대통령이 먼저 화해 제스처를 내밀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별로 의미 없는 얘기다. 만나자고 만나지는 게 아니잖은가. 나 때는 김일성이 먼저 보자고 했는데 실제 만났으면 상당한 양보를 받았을 거다. 근데 김대중과 노무현은 전부 양보만 하고, 그 꼴이 뭐냐. 시간이 얼마 걸릴진 모르지만 북한은 기아 때문에 멸망할 거다. 북한 생기고 인구가 반으로 줄었지 않나. 저게 과연 존립할 수 있는 나라인가. 최근 김정일 사진도 전부 합성한 거다.”

-하나회 숙청할 때는 대단했다.
“그렇다. 무서운 힘을 갖고 한 거다. 하나회 숙청 안 했으면 김대중·노무현이 대통령 못 했다. 80년대 중반 국회 국방위원 20명이 육군본부 회식에 초대받아 갔다가 육군 참모차장한테 모조리 두들겨 맞았다. 당시 여야 원내총무도 국방위원이었다(당시 여당 총무는 이세기, 야당 총무는 김동영 의원). 그런데 아무도 말을 못 했다. 그만큼 군인이 무서웠다. 군인들이 정치하는 대표적인 예를 든 건데, 하나회가 청산되지 않았으면 쿠데타를 얼마나 더 했을지 모른다.”

-아침마다 아버지 김홍조옹께 문안인사 드렸는데(김옹은 지난 9월 30일 별세).
“60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매일 오전 6시면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도 정치 얘길 좋아하셔서 어떤 때는 30분도 통화하곤 했는데 돌아가시기 직전엔 ‘야야, 춥다. 조심해라’는 말밖에 안 하시더라. 별로 춥지도 않을 때였는데….”

-김현철씨는 전화 자주 하나.
“그놈은 전화 안 해, 허허. 1주일에 한 번쯤 들른다.”
 
1시간20분간의 인터뷰가 끝나자 YS는 “식사나 같이 하자”며 바로 옆 식당으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자리에 앉아 그는 두 손을 모으고 대표 기도를 했다. “저희가 모든 일에 감사하게 하시고, 이 나라와 민족을 굽어살펴 주소서. 난국을 헤쳐 나갈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멘.” 식사는 잡곡밥에 시래깃국이 나왔다. YS는 식사 도중 “우리 명순이, 우리 명순이” 하며 부인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하지만 손명순 여사는 끝내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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