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욱의 경제세상] 정부 선제적 조치 기다리다 숨 넘어간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90호 02면

11월은 늘 스산하다. 황금빛 가을을 뒤로한 채 다가오는 겨울의 한기를 가늠하는 계절이라서다. 여기에 남은 달력이 한 장뿐이라는 초조와 허전이 더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불면으로 고생한다. 그러나 아무리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다 해도 올 11월에 비할 수 있으랴. 나이 50줄에 들어 처음 맞이한 탓도 있겠지만 이보다는 닥쳐올 경제 한파 걱정이 더 크다.

불면의 밤은 대개 개인사로 시작된다. 집 사느라 돈을 빌렸는데 하루가 다르게 이자가 올라가 걱정이고 다달이 붓던 펀드는 애저녁에 큰 손실이 나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이런 판에 회사에서 떨려 나기라도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이 캄캄해진다. 몇 달 전 미국 경제가 하 수상해 펀드를 일부 정리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때도 기업이 망하고 구조조정 태풍이 불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래도 설마 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거리다 보면 어느새 날이 부옇게 밝아 온다.

하지만 11월엔 성과도 있었다. 역설적이지만 지금 우리는 살얼음판 위에 서 있고 이대로 가다가는 망한다는 걸 알게 됐다. 무엇이 잘못됐고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깨달은 것도 큰 소득이다. 더욱 다행인 건 11년 전 비슷한 위기를 겪었기에 탈출 비법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100년 만의 위기니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다르다. 돈을 풀기 위해 공적자금을 조성했고, 옥석을 가리기 위해 워크아웃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한편으론 살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실 책임을 묻는 데 성공했기에 위기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는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교훈도 얻었고, 지급불능 위기에 빠진 씨티그룹과 GM에는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살리기 어렵다는 것도 안다.

문제는 정부의 대처다. 그들은 참담한 희생을 치르며 얻은 교훈을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일까. ‘요행을 바라면 다 죽는다(幸生則死)’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길로 가고 있다. 범정부 차원의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컨틴전시 플랜을 짜도 시원찮을 판에 오래전 실패작으로 판명 난 부도유예협약의 후신인 대주단 협약만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다. 정부가 진두지휘하면서 옥석을 가려도 될까 말까인데 ‘은행 자율’이란 간판 뒤에 숨어 한가하게 있으니 애당초 틀린 일이다. 돈을 푸는 것도 뜨뜻미지근하다. 금리는 충격적으로 내리고, 재정지출은 파격적으로 늘리고, 공적자금 조성 준비도 서둘러야 하는데 인플레이션과 재정 건전성 타령을 하며 미적댄다.

지금 다들 숨이 넘어가고 있다는 걸 아는 정부라면 이럴 수 없다. 국내 은행의 보증은 해외에서 안 통한 지 오래고, 달러가 부족해 하루짜리 돈을 빌리는 데 3%가 넘는 초고금리를 내면서도 은행들은 통사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5대 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보증사의 보증을 받는 건 하늘의 별 따기고 기업어음과 회사채 발행은 사실상 전면 중단돼 돈 구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투자를 늘려라,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하라는 등 물정 모르는 협박(?)만 해댄다고 한다. 하긴 대통령이 국제기준인 BIS 비율을 낮추면 어떻겠느냐는 식의 발언을 하는 판이니 더 말해서 뭣하랴. 밑에서 뭘 보고하고, 대통령은 어떤 얘기를 듣는지 모르겠다. 나서면 책임만 덮어쓴다며 모두 복지부동하고 있다는 소문이 관가에 파다한데 그 때문인가.

헤르만 헤세는 ‘11월’이란 시에서 “폭풍 몰아치는 밤이 지나면/아침에 얼음 깨지는 소리 들린다/이별의 눈물 흘리고/세상은 죽음으로 가득하다”고 했다. 퇴색과 근심의 계절인 11월을 떠나 보내는 오늘, 헤세가 노래한 그 엄혹한 겨울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데도 ‘선제적이고 과감한 조치’는 언제쯤 볼 수 있을는지. 이렇게 맥 놓고 있다가는 봄이 오는 소리를 오래도록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막막하기만 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