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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도 성장 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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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교육방송(EBS)의 수능강의 후 사교육비 지출이 지방을 중심으로 19.8% 줄어들었다고 한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인문계 고교생 자녀를 둔 전국 학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라고 하니 신뢰성이 있어 보인다.

백약 무효한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과외에 대한 처방전이 나온 셈이어서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사교육을 잡는답시고 중.고교를 평준화해도 군사정권 시절에는 세무조사를 합네, 학부모를 구속시키네 하며 서슬퍼렇게 야단법석을 떨어도 으레 증가만 하던 사교육비가 감소하다니….

자식의 학원비를 한푼이라도 벌기 위해 주부가 노래방 도우미로, 식당일을 찾아 헤매는 눈물겨운 행각을 그만둬도 되는 것인가. 국가 전체적으로 연간 13조6000억원에 이르는 사교육비가 이제는 보다 생산성이 나은 분야에 쓰여질 것인가. 또 질높은 교육을 찾아 해외로 떠나는 유학 행렬이 주춤할 것인가. 그야말로 기대와 의문이 교차한다.

부존자원이 변변찮은 데다 겨우 인구 4700만명인 분단 남한이 세계 12위의 교역국으로 우뚝 선 이면에는 남다르고 유별난 교육열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렇다고 공교육이 충실하고 교사들이 뛰어나 학교와 그들이 가르친 학생이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학교 밖에서 이뤄지고 있는 또 하나의 교육, 사교육도 인재 육성에 상당부분 일조해 왔고, 그 역할은 지금도 여전하다.

박테리아는 인간에게 불가근 불가원의 존재다. 세균은 인체에 이롭기도 하고, 질병도 부른다. 과외는 인간에게 교육이 필요한 이상 박테리아처럼 결코 없애지 못한다.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어떠한 형태의 경쟁이 상존하는 한 아무리 최선의 입시제도를 마련해도 과외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동안의 온갖 사교육 대책이 한결같이 과외시장의 팽창을 초래한 채 실패로 끝난 것은 정부가 사교육의 실체를 무시하고 부정했기 때문이다. 과외는 학생을 시험기계로 전락케 하는 비교육적인 행위이자 가계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원흉이라는 편협된 사고에 정책 입안자들이 사로잡혀 있던 탓이다. 그러다 보니 사교육을 극복하는 첩경인 공교육의 정상화와 활성화는 외면하고 교육정책의 초점을 오로지 대증요법에 불과한 과외 근절에만 맞췄던 것이다.

과외가 줄어들 것이라던 평준화제도는 학생 간, 학교 간 경쟁을 허용하지 않고 학력저하의 주범으로 지목돼 논란의 도마 에 올라 있다. 과외를 받지 않고 정상적인 고교 수업만으로도 풀이가 가능하다며 10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수능시험은 상당수 대입 수험생에게 '고4는 필수'라는 재수과정을 강요하는 실정이다.

사설학원에 의존하지 않고 학교 교육만으로는 학생부와 수능의 고득점이 불가능한 게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과외를 일망타진해야 할 대상으로 도외시하는 교육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전인교육이 불가능한 사교육의 역기능을 잊지는 말되, 공교육에서 사라진 경쟁력을 추구하는 과외의 순기능을 인정해야 한다. 과외를 인력 양성의 또다른 엔진으로, 공교육의 필수적인 보완재로 간주하는 발상의 전환과 진취적 자세가 절실하다. 이런 점에서 사교육비 경감을 목표로 시작한 수능방송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과외의 필요성을 용인하는 한편 사교육을 공교육의 장내로 끌어들여 학부모 부담을 덜어주는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수능뿐만 아니라 학교 밖에서 충족되고 있는 중.고교생의 보충.심화 교과과외는 물론 예체능 교습도 교내로 흡수되기를 기대한다.

도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