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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병부터 눈여겨봐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코노미스트국세청은 11월 11일 앞으로 무선인식기술(RFID)을 이용해 ‘가짜 양주’를 가려낼 것이라고 밝혔다. 위스키의 병마개 부분에 전자태그를 부착해 돌리면 자동으로 파손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휴대전화로 즉석에서 감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짜 양주 생산자들은 이미 RFID를 피해갈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첨단기술 없이도 가짜 양주를 피해갈 수 있다는 양주 고수들을 만나 그들만의 노하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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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봐서 진짜, 가짜를 가려내기는 어렵다. 진짜 양주는 오른쪽.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양주 가격이 비싼 편에 속한다. 애주가들은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불만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싼 돈을 주고 양주를 샀는데 가짜 양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수들이 밝히는 ‘가짜 양주’ 감별법 #너무 싼 술집 피하고 취했을 때는 아는 집에 가는 게 상책

시중에 유통되는 양주 중 많게는 30% 이상이 가짜 양주라는 얘기도 있다. 가짜 양주가 많은 이유는 가짜 양주를 만드는 제조자들의 비양심적인 상술 때문이다.

보통 6병의 가짜 양주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진짜 양주의 원액 양은 양주 한 병의 70% 정도다. 원액에 국내에서 생산되는 값싼 양주와 색을 내는 캐러멜 색소, 물을 섞고 가짜 양주 기술자들이 개발한 특별한 ‘소스’를 각각의 양주 특성에 맞게 배합하면 진짜와 비슷한 가짜 양주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가짜 양주를 만들어 팔면 진짜 양주보다 1.5~2배의 이익을 챙길 수 있다. 한국인의 독특한 술 문화가 가짜 양주 제조를 부추긴다는 의견도 있다. 보통 외국에서는 양주를 일정량 이상 마시지 않는다. 많이 먹더라도 앉은 자리에서 한 병 이상 비우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한국인은 양주를 맥주나 소주처럼 마신다.

흔히 말하는 폭탄주의 주재료가 양주다 보니 한 자리에서 양주를 몇 병씩 비우는 일도 흔하다. 취기가 오르면 이 양주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구별하기도 어렵다. 가짜 양주를 제조하고 판매하기에 더없이 좋은 여건이다. 어지간히 비싼 양주가 아니면 거의 빈 병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도 가짜 양주 제조를 부추긴다.

가짜 양주가 많다는 사실이 보편화된 후 양주를 판매하는 술집의 풍경은 과거와 조금 달라졌다.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마개를 열기도 하고, 일일이 라벨을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정부에서도 가짜 양주를 구별하는 방법을 따로 정리해 알리고 있다. 보안 기술이 발전하면 그만큼 해킹 기술도 발전하게 된다.

가짜 양주 구별법이 있다는 것은 그보다 정교한 가짜 양주 제조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위를 가리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거꾸로 흔들어 거품의 양을 보는 것이다. 가짜 양주는 거꾸로 들고 흔들었을 때 거품의 양이 많고, 지속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다. 불순물이 많이 섞인 탓이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 정확한 구별법은 아니다.

술병에 붙어 있는 라벨과 홀로그램의 상태에 따라 구분하는 방법도 있다.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된 양주는 한글 라벨이 붙어 있다. 라벨이 영어로만 적혀 있는 것은 의심해 봐야 한다. 그러나 같은 양주라도 수입업체에 따라 한글 라벨을 붙이는 방식이 달라 메모를 하고 다니지 않는 이상 매번 적용하기는 어렵다.

또 뒤늦게 시장에 나온 술은 라벨이 없을 수도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단번에 알아볼 정도로 허술한 라벨과 홀로그램이 붙은 가짜 양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짜 양주도 만드는 과정의 정교함에 따라 A, B, C, D 등급으로 나뉜다. 라벨, 홀로그램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C, D급 정도다.

미식가가 맛으로 음식의 옥석을 가려내듯 양주의 맛으로 가짜 양주와 진짜 양주를 구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위험 부담이 크다.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술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맛으로 가짜 혹은 진짜를 논하는 일은 위험하다.


전문가도 맛으로 구별 힘들어

국세청이 말하는 ‘이런 양주는 가짜’

-거꾸로 흔들어 거품이 오래 지속되는 것
-제조일자가 오래된 것과 상표에 흠집이 있는 것
-양주의 색깔이 흐릿한 것
-알코올 향이 강한 것
-홀로그램이 거칠고 조잡한 것

고수들이 권하는 ‘가짜 양주 피하는 법’

-정식 바텐더가 있는 곳에서 마셔라
-취했을 때는 아는 술집에 가라
-처음 가는 술집은 피하라
-다시 올 것처럼 이야기하라
-두 병부터 가짜일 가능성 크다
-가격이 지나치게 싸면 의심하라
-이벤트 벌이는 양주는 믿을 만하다
-최근에 출시된 양주를 마셔라

이보다 좀 더 정확한 방법은 술의 밀도로 확인하는 것이다. 가짜 양주는 물과 얼음을 넣었을 때 순간적으로 층이 갈리면서 깨짐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술집에 간 이유가 양주를 먹는 것이 아니라 가짜 양주와 진짜 양주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이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순간 어색해지는 술자리의 분위기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가짜 양주는 속여서 팔려고 의도한 사람이 있는 이상 완전하게 뿌리뽑기는 불가능하다.

법이 무거워져 대부분 실형을 받는다지만 여전히 가짜 양주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가짜 양주를 구별하는 확실한 방법은 없을까? 몇 가지 원칙을 지키면 가능하다.

이 원칙은 우리가 양주를 접하게 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인터넷 동호회 ‘잇츠바다’는 일주일에 두 번 칵테일, 와인, 위스키 등 다양한 술을 함께 마시며 공부하고 친목도 다지는 모임이다.

당연히 동호회 회원들의 술에 대한 감각은 남다르다. 그러나 이들도 가짜 양주와 진짜 양주를 쉽게 구별하지 못한다. 동호회 회원이자 홍대 앞에서 바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신주’씨는 전문적인 바텐더가 있는 곳에서 양주를 마실 것을 추천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토킹 바나 비키니 바에서는 가급적 양주를 마시지 않는 것이 좋아요. 양심적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겠지만, 전문적인 바텐더가 있는 곳이 더 신뢰가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가짜 양주의 30~40%는 룸살롱이나 토킹 바 등에서 유통된다고 한다. 잇츠바다의 회원인 ‘레온’씨는 “양주 가격이 다른 곳보다 지나치게 싼 곳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그는 “가격이 싼 양주는 가짜거나 정식 유통 경로로 들어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술이 많이 취했을 때는 아는 곳에서 양주를 마시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처음 가는 술집에서 양주를 먹지 않는 것도 가짜 양주를 피하는 방법이다. 예전에 한 번 왔다는 인상을 풍기거나, 다시 올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단골 손님이 될 손님에게 가짜 양주를 쉽게 팔지는 않기 때문이다. 룸살롱을 운영하는 김영제씨가 말하는 방법은 좀 더 현실적이다. 룸살롱에서 가짜 양주가 나갈 때는 보통 두 번째 병부터다.

첫 번째 술은 진짜가 나가더라도 손님들이 취기가 오른 두 번째부터는 가짜 양주를 내놓는다는 것이다. 김씨의 말이다.“가끔 우리한테도 가짜 양주를 진짜 양주처럼 파는 도매업자들이 있어요. 그러나 그건 드문 경우고 대부분은 가짜 양주라는 것을 알고 받아요. 가짜 양주를 팔다가 손님들의 항의가 들어오면 보통 바꿔줍니다. 도매업자 측에서 잘못 준 것 같다고 말하면 되거든요. 그러니까 손님들 입장에서는 한 병만 마시거나, 적극적으로 항의하는 것이 유리하지요.”

이 외에도 이벤트 중인 양주를 마시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6병 주문하면 1병을 서비스로 주는 이벤트를 하는 양주는 시중에 가짜가 거의 유통되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판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양주를 선택하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가짜 양주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 상권이 발달했거나 사람들이 몰리면서 양주의 수요량이 갑자기 늘어난 곳은 피한다. 이런 곳에는 가짜 양주가 유입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가짜 양주를 피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나 확실한 방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음주 습관을 바꾸는 것이다.

홍대 앞에서 바(Bar) ‘살롱드팩토리’를 운영하는 최영길씨는 “가짜 양주를 판 사람이 잘못이지만 술에 대해 전혀 관심 없이 ‘부어라, 마셔라’ 하는 사람도 문제”라며 “맛과 향을 즐길 정도로 적당히 마시는 것이 가짜 양주도 피하고, 진짜 양주를 제대로 음미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기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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