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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남극 빙하 밑에 활화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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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 남극의 빙하와 바다. 최근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급속히 녹고 있다.

남극 빙하 밑에는 많은 사화산이 있다. 수천년 또는 수천만년 전에 불기둥을 뿜어낸 뒤 더 이상 활동하지 않고 있는 것들이다. 그 뒤 지금까지 남극에서 활화산의 존재는 더 이상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해저지질 연구팀은 이달 들어 처음으로 남극 얼음 밑에서 활화산을 찾아냈다. 쇄빙선인 '굴드'호를 동원한 정밀 탐색작업 끝에 얻어낸 개가다.

연구팀장인 유진 도맥 박사는 활화산을 발견한 뒤 우리나라의 남극 과학기지인 세종기지 월동대장 윤호일 박사에게 e-메일을 보내와 지난 겨울 세종기지에서 조난 사고로 사망한 고 전재규 대원의 이름을 활화산에 붙이고 싶다고 했다. 현재 활화산에 이름을 붙이는 데 필요한 고 전재규 대원의 이력이 도맥 박사에게 전달된 상태다. 이에 따라 특별한 변동이 없는 한 고 전재규 대원은 남극 빙하 밑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활화산의 이름으로 남극에 영원히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남극 빙붕 밑 활화산의 위치는 세종기지에서 150㎞ 정도 떨어진 남극 북단 해저. 현재는 용암 등을 내뿜고 있지 않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이라는 것이 도맥 박사의 관측이다.

활화산은 남극 대륙 연안에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바다 밑 대륙붕에 있다. 활화산이 있는 바다 수면은 겨울엔 완전히 얼어붙으며, 그 주변에는 크고 작은 빙붕이 흩어져 있는 곳이다. 특히 화산이 있는 곳의 빙붕은 웨들해 라슨빙붕으로, 최근 급격하게 붕괴되고 있어 국제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곳이다. 바닷속 분화구 주변에는 과거 빙하가 팽창할 때 해저 밑바닥 단면이 V자형으로 깊게 파인 협곡이 있다. 활화산은 해저 밑바닥에서 700m 높이에 솟아 있다. 화산암은 1.5㎦ 규모다. 그 바다 수심은 1000m 정도다.

도맥 박사팀이 화산 주변에서 건져 올린 돌들은 모두 검게 탔으며, 아직 바다 생물들이 달라붙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는 분화구 주변도 마찬가지다. 또 화산이 터진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확연히 구분됐다. 바다 미생물들을 포함한 유기물의 퇴적층이 화산이 터진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경계지역에서 끊어져 있는 게 비디오 영상으로 확인된 것이다. 고도로 정밀한 온도계를 동원해 화산 주변을 측정한 결과 바닷물 온도를 높이는 미미한 지열도 확인됐다. 그 주변에서 바닷물의 색깔이 변한 적이 있다는 어부들의 증언도 있었다. 도맥 박사는 이런 점들을 활화산이 최근에도 폭발한 증거로 내놨다.

해저 화산 폭발은 직접 관측하기가 어렵다. 너무 깊은 바닷속에서 일어나는 일인 데다 활화산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은 남극 빙하 밑은 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도맥 박사처럼 분화구 근처의 돌과 식생 상태, 유기물의 퇴적 정도 등을 가지고 화산의 존재를 밝힌다. 해저 화산의 경우 용암에 갇혔던 바닷물이 용암에 긴 빨대처럼 구멍을 만들며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윤 박사는 "남극의 빙하가 녹고 있는 원인 중 하나로 활화산을 꼽아야 할지 모른다"며 "앞으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면 빙하의 녹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과학자는 남극 웨들해의 빙붕을 녹이는 데 이 활화산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남극 빙하의 몇%만 녹아도 솔로몬 제도 등 해발 고도가 낮은 작은 섬나라의 상당수는 바닷물에 잠겨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으로 기후 학자들은 예측하고 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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