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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고맙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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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6강전>
○·장 리 4단(중국) ●·이세돌 9단(한국)

제6보(66~77)=66의 곳은 백이 건진 유일한 큰 곳. 그러나 이세돌 9단은 71도 만족스럽다. 자신 같으면 여태 가만 놔둘 리 없는 중앙 흑이 10집도 넘는 실리마저 챙기게 되었다.

72에 이어 73으로 응수를 물었을 때 바짝 엎드리고 만 74가 다시 검토실을 경악시켰다. 놀라운 인내다. 국면은 패망의 길을 가고 있는데 장리 4단은 겁에 질려 피 같은 한 점을 헌납하고 있다. 74는 삼수갑산을 갈지언정 ‘참고도1’ 백1로 받아야 했다. 문제는 2로 들여다보는 수. 6으로 끊겨 곤란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흑도 백 7, 9로 모양이 뭉개지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백에는 외려 옥쇄를 결행할 수 있는 기회였다(단 ‘참고도2’ 백 3, 5로 간단히 수습하려는 것은 흑6이 있다. A의 약점 때문에 8을 당한다).

바둑에서 오고 가는 모든 수는 말 없는 협상이다. 그러나 백은 계속 ‘낮은 포복’으로 일관했기에 흑이 주는 떡(66) 외엔 얻은 게 없다. 강자와의 협상에서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겠지만 과연 어느 각도까지 구부리느냐는 영 다른 문제다. 조폭 영화처럼 90도로 꺾어서는 “쉽게 져 줘서 고맙다”는 말 외엔 얻을 게 없다. 가볍게 75를 두는 이세돌 9단의 손길이 “고맙다”고 말하는 듯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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