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을찾아서>17.낙양 天津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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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일상 속박 벗어나면 자유로운 ‘道人’배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잠자고…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단하천연선사가 원화3년(802년) 낙양에 올라갔다가 어느날 천진교(天津橋)위에서 두다리를 쭉 뻗고 누워 쉬고 있었다. 때마침 낙양 유수(부시장) 정(鄭)공이 행차중 이를 보고 꾸짖었다. 그러나 그는 들은척도 않은채 일어나질 않았다. 수행중인 관리가 연유를 물었다. 단하는 느릿느릿한 어투로 대꾸했다. 하릴없는 중이외다(無事僧). 유수가 기이하게 여기고 비단 한필과 옷 두벌을 올린후, 날마다 쌀과 밀을 보내니 이로 인해 온 낙양이 단하선사에게 귀의했다.

단하천연선사(738~802)는 중국 선종의 대표적인 풍전한(風顚漢:광기가 있는 괴짜승)이다. 풍전은 치둔(癡鈍)의 철학·오물의 철학·묘지의 철학등과 함께 선사상의 밑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주춧돌이다. 선가에서 특히 강조하는 풍전과 치둔은 실제로 미치거나 어리석은게 아니다. 그저 그런 척할 뿐인 양광(佯狂)·양치(佯癡)다. 곧 속세를 살아가는 처세술로서의 ‘적극성’과 ‘순수성’을 말한다.

돈오선종은 한마디에 깨친 사람들을 배울게 더이상 없는 하릴없는 ‘한가한 도인’이라고 한다. ‘수능엄경’에 이런 고사가 있다. 옛날 인도 마가다국 수도 슈라바스티에 아주나닷다라는 부자가 살았다. 그는 거울속의 자기 얼굴을 보는 걸로 낙을 삼다가 어느날 문득 자신의 얼굴 자체를 보고싶어 발광했다. 미쳐 시내 거리를 헤매던중 어떤 사람으로부터 네 얼굴은 너한테 있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아’를 발견, 광기를 멈추었다. 선가는 이 설화의 발광이 그친 곳, 즉 깨친 후를 ‘무사’라 한다.

임제의 스승인 황벽희운선사는 “도인이란 일 없는 사람이어서 실로 허다한 마음도 없고 나아갈만한 도리도 없다. 더이상 일이 없으니 헤어져들 돌아가라”고 말했다(‘전심법요’).

또 그의 어록 ‘완릉록’은 “밝음과 어둠에도 속하지 않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법’이라 하고 법을 보는 것을 ‘부처’라 하며 부처와 법이 모두 함께 없는 것을 ‘승(僧)’, 또는 하릴없는 중, 한몸의 삼보(一體三寶)라 하느니라”고 설파하고 있다.

임제선사(?∼866)는 진정한 견해를 갖고 생생히 살아 있는 현재를 그대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사람, 다시말해 인위적 조작없이 대범함을 갖춘 사람을 ‘무사시귀인(無事是貴人’이라고 했다. 매일 매일의 일상사를 따르면서도 그것들에 미혹당하는 일 없는 것이 바로 ‘무사’다. 이런 사람이 곧 ‘하릴없는 귀한 사람’인 것이다.

단하가 낙양유수에게 설파한 ‘무사승’은 할 일이 없는 ‘실업자’라는 소리가 아니다. 오직 고단하면 천진교 위에서 다리를 뻗고 쉬는 등 평상(平常)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생생한 도인의 실상을 보여준 것이다. 본래 선이 추구하는 불법(佛法)의 본질은 이같이 기성의 노후한 가치와 차별적인 규준을 깨버리는 ‘자유’다.

‘무위’와 ‘무사’는 노장에도 나오지만 7세기 이후로는 선불교의 전용어가 됐다. 영어로는 무위를 non-action, 무사를 no-business라고 번역하지만 서양엔 이에 비견할 사유방식이 없어 그 뜻을 완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무위와 무사는 인간의 내적·외적 추구행위가 지닌 기만성을 자각한 후 그 행위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추구로부터 도피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버리는 것이다. 선은 즉금즉처(卽今卽處:Now and Here)의 것이 바로 실재(實在)라는 것을 깨닫길 요구하기 때문에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삶에 관한 그릇된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 원융무애한 현실을 살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게 된다.

단하의 충격적인 ‘풍전’ 하나만 더 보자.

그는 유력(遊歷)중 어느 추운 겨울날 낙양 혜림사(慧林寺)에 도착했다. 다짜고짜로 대웅전에 모신 목불(木佛)을 끌어낸 뒤 장작을 패 불을 피워놓고 언 몸을 녹였다. 이를 본 주지가 놀라 달려와 ‘아니 부처를 쪼개서 불을 피우다니! 무슨 망발이오’라며 부들부들 떨었다.

단하는 태연스레 목불이 탄 재를 뒤적이며 말했다.

“사리가 얼마나 나오는지 찾고 있는 중이오.” 주지가 말했다.

“이사람 정말 미쳤군. 목불에서 무슨 사리가 나온단 말인가!” 단하가 힐난했다.

“사리가 없다면 부처가 아니지. 아직 몸이 덜 녹았으니 나머지 두 협시불도 마저 내다가 불때버립시다.”

단하가 목불을 불태운 만행(萬行)을 화두로 ‘단하소불(丹霞燒佛)’이라 한다. 이쯤이면 미치광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단하의 말이 맞다. 목불을 우상화하고 있는 신앙현실을 힐난한 그의 사자후는 어리석은 인위적 불상조성보다 깨침을 통한 무위와 무사를 이루는 게 옳은 불법의 길이라는 한 소식이다.

에피소드 한토막―.

관리:단하화상이 목불을 태웠는데 어째서 주지승의 눈썹이 빠졌습니까.

조주:귀관의 댁에서는 누가 날것을 삶아 요리합니까.

관리:머슴입니다.

조주:그 참 저 단하화상같은 좋은 솜씨를 가졌군요.

중국에는 사법(邪法)을 설하면 눈썹이 빠진다는 속설이 있다. 또 혜림사 주지는 화(嗔)를 낸 죄업 때문에 눈썹이 모두 빠져버렸다고도 한다.

한 관리와 조주선사 사이의 선문답은 단하가 목불을 태워 추위를 피한 것이나 머슴이 일상적으로 날것을 익혀 요리하는거나 똑같다는 것이다. 선가의 사홍서원(四弘誓願)은 배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잠자고, 추우면 화롯불 쪼이고, 더우면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평상심이 곧 도(平常心是道)라는 게 바로 이런거다.

조주는 타이른다. 그것을 모르고 다 만들어진 요리만 먹고 있다가는 귀관도 혜림사 주지처럼 눈썹이 빠져버린다고.

화두 ‘무사승’과 관련한 낙양 낙하(洛河)를 가로지르는 천진교는 현재 신낙양교(96년4월 개통)옆에 옛 석축 아치 하나가 기념물로 남아있다. 그 옆에는 기념정자(민국26년 건립)가 있다.

정자의 비에는 ‘낙양성에서 남쪽으로 가다가 끊어진 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아치 하나만 남아 있다. 수나라 천진교의 유지다’라고 씌어있다.

옛 천진교 옆으로는 구낙양교와 신낙양교가 마치 서울의 천호대교와 광진교처럼 나란히 있다. 천진교는 역사의 유전을 따라 몇번이나 새롭게 건설됐지만 그 위치는 옛날 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낙양 천진교와 혜림사는 현지답사 직전까지도 없어졌다고 해 사실상 포기상태였다. 낙양에 도착해 ‘낙양지(洛陽誌)’등을 뒤지고, 향토사가들한테 수소문해 가까스로 그 유지를 찾았다.

혜림사는 먼 옛날 병화로 폐허가 됐고 현재는 그 유지만 남아 있다. 낙양시 동쪽 교외 들판의 1천여평 땅에 붉은 벽돌담을 둘러쳐놓은 게 그 유지다. 출입문이 자물쇠로 잠겨 월담을 해 들어가봤다.

공터고 유지비(遺址碑)와 그 옛날 주춧돌 몇개가 있을 뿐이었다.

증명:月下 조계종종정 ·圓潭 수덕사방장

글:이은윤 종교전문기자 사진:장충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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