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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위기가 잠자던 극좌·극우 이데올로기 깨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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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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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얻는 좌파=일본에선 공산당원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1만2000명이 새로 공산당에 가입했다. 주로 20~30대 청년들로, 취업난과 실업 등으로 경제위기를 피부로 실감하는 사람들이다. 일본 공산당 관계자는 “특히 9월 금융위기 이후 가입자 수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공산당은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약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문학도 때아닌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작인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의 소설 『게공선(蟹工船)』은 올해 초 재출간된 뒤 벌써 50만 부가 팔렸다. 예년에 비해 100배 정도 늘어난 것이다. 가혹한 노동을 강요받는 선상 노동자들이 집단 봉기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세계 대공황이 일어났던 1929년 처음 발표됐다. 소설 속에서 배 안에 갇혀 강제 노동과 과중한 잔업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의 일본인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분석이다.

독일에선 마르크스가 되살아나고 있다. 독일 언론은 최근 몇 달 사이 『자본론』 판매 부수가 3배나 늘었다고 전했다. 카를 마르크스(1818~83)가 1867년 저술한 『자본론』은 사회주의 소련이 붕괴한 90년대 이후 일반 독자들의 손에서 멀어진 책이다. 『자본론』을 출간한 한 출판사 사장은 “현재의 경제위기를 몰고 온 정부의 정책 방향에 회의를 느낀 젊은 층이 마르크스에게서 해답을 찾기 위해 『자본론』을 사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사회주의 통치 이념 단속에 나섰다. 마카오 정부가 지난달 22일 공개한 ‘국가보호안전법’ 초안이 실례다. 중국 정부 비준을 거쳐 이르면 내년께 시행될 예정인 이 법안은 명목상으론 국가와 사회의 안전을 해치는 행위를 처벌하려는 법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서방식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개방의 통치 이념을 거부하고 중국식 사회주의 이념을 강화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다.

◆극우주의 득세=극단적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앞세우는 극우파도 세력을 얻어가고 있다. 사회적 위기의 책임을 특정 집단이나 외국인 탓으로 돌리려는 대중심리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9월 말 치러진 오스트리아 총선에서는 극우파 돌풍이 불었다. 2년 전 총선에서 11%를 얻는 데 그쳤던 극우 성향의 자유당이 이번 총선에선 18%를 얻었다. 지난 총선에서 4.1%를 얻었던 또 다른 극우 정당 ‘오스트리아의 미래를 위한 동맹’도 이번엔 11%의 지지를 얻었다. 극우 정당들은 외국 이민자, 특히 무슬림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테러나 범죄를 일으키는 주범이라고 주장하면서 극심한 인플레이션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유권자들의 감성을 파고 들었다. 독일에서도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는 극단적 신나치주의 정당인 국가민주당(NPD)의 세력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독일 브란덴부르크-베를린 사회과학 연구소의 군나르 빈클러는 “현재의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 혼란은 항상 극우 정당들이 득세할 수 있는 훌륭한 조건을 제공해 왔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에선 최근 인종주의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9월 중순 북부 밀라노 거리에서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태생의 19세 청년이 한 카페 주인에게 도둑으로 몰려 쇠파이프로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며칠 뒤 남부 나폴리 교외에선 아프리카계 이민자 6명이 길거리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이후에도 인종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신나치주의 단체인 ‘국가사회주의운동(NSM)’이나 백인 우월주의 단체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뉴욕·홍콩·도쿄=남정호·최형규·김동호 특파원,
서울=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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