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비경>1.호주 중부 울룰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지구촌 곳곳에 숨겨져 있는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접할때마다 우리는 진한 감동에 사로잡힌다.이들 비경(비境)은 대자연이 빚어낸 최고의.예술적 가치'로.인간이란 존재'를 한없이 보잘것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그곳은 또 많은 동.식물이 살아가는 귀중한 생태계의 공간이기도 하다.중앙일보는 정축년(丁丑年) 새해를 맞아 인간의 손때가 덜 묻은 비경을 찾아가보는.세계의 비경'을 연중 기획시리즈로 마련,연재한다.여행의 참된 뜻을 돌아보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되새 겨보기 위해서다.
[편집자註] 태초에 산이 있었다.거대한 바위산.사방이 모두 지평선만 보이는 호주의 중부사막 한가운데 울룰루와 카타추타는 그야말로 .평지돌출'로 솟아 있다.
“처음엔 커다란 모래언덕인 줄 알았다.그러나 걸음을 옮겨 가까이 갈수록 알 수 없는 신비에 우리는 압도당했다.모래바람 사이로 뿌옇게 보이던 그 모습이 확실해졌을 때 나는 눈을 의심했다.맙소사,그것은 단 한 덩어리의 거대한 바위였다.
신화속의 그 어떤 산도 이보다 더 웅장하진 않았으리라.”(에드먼드 고스.1873년 7월18일) 유럽인으로 처음 울룰루를 발견했던 고스는 이렇게 놀라움을 적었다.울룰루는 대자연이 빚은사막의 기념비다.높이 3백83(해발 8백63),둘레 9㎞의 바위덩어리가 일망무제의 모래바다 위에 하나의 섬으로 떠있다.
카타추타는 울룰루에서 북서쪽으로 32㎞ 떨어져 있다.카타추타는 애버리진(호주 원주민)언어로.많은 머리'(Many Heads)란 뜻.울룰루가 한 덩어리인데 비해 카타추타는 36개의 둥그런 바위덩어리로 이뤄진 산이다.
울룰루와 카타추타는 2만여년동안 이곳에 살았던 애버리진들에게신성(神聖)의 공간이었다.울룰루가 일신교라면 카타추타는 다신교였던 셈이다.
카타추타의 둘레는 24㎞,넓이는 28평방㎞에 달한다.36개의바위돔 중 가장 큰 것의 높이는 5백46(해발 1천69).
그러나 이보다 훨씬 작은 돔일지라도 지구상의 가장 위대한 성당의 왕관이 되기에 충분할 만큼 카타추타는 장대하다.
울룰루와 카타추타는 1백㎞ 밖에서도 육안으로 보인다.두 산 모두 정상은 둥그렇고 가장자리는 가파른 직벽을 이루고 있다.멀리서 보면 바위덩어리지만 가까이 가면 달라진다.산 주변엔 계곡과 조그만 호수가 감춰져 있다.나무와 풀꽃.이파리 도 보인다.
무릎 높이의 작달막한 사막가시나무인 스피니펙스가 지천으로 깔리고 그 사이로 푸른 색 혀를 날름거리는 라이자드 도마뱀과 손바닥만한 흰색 주머니쥐,사막 비단구렁이 따위가 소리없이 움직인다. 1년내내 강수량이 2백53㎜에 불과하며 그나마 겨울(7~12월)엔 단 한 방울의 빗줄기도 없는 불모의 땅.이곳은 바닷속(60억년전)이었다.그러다 해저가 융기를 시작(55억년전),단층작용에 의해 이 일대가 솟아올랐을 것으로 지질학자 들은 추정한다. 울룰루는 단단한 장석질 사암,카타추타는 자갈과 조약돌이 뭉친 역암층으로 이뤄진 바위다.
수십억년에 걸친 침식.풍화작용으로 인해 주변의 이암과 석회암.화성암층이 모두 깎여나간 반면 이 두 산만 살아남은 것은 그만큼 층이 균일하고 단단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이곳의 원래 주인이던 애버리진은 이를 추쿠르파로 설명한다.애버리진은.우주의 주역'이란 의미에서 자신들을.아르낭구'라고 부른다.
추쿠르파는 지난날 자랑스런 아르낭구들이 우주와 인간을 뭉뚱그려 이해하던 총체적인 체계다.추쿠르파는 창세기면서 역사이고,철학이며 자연과학이다.
추쿠르파에 따르면 울룰루 곳곳의 계곡과 동굴.바위의 모양은 모두 한때 자신의 동족이었던 말라(작은 월러비).쿠니아(비단 구렁이).리루(사막 독사).룽카타(푸른혀 도마뱀)등이 남긴 흔적과 관계된다.
울룰루 동쪽끝 절벽에 수직으로 깊게 파인 길이 50의 균열은쿠니아가 조카의 원수를 갚기 위해 리루와 전투를 벌이면서 방패로 내려친 자국이다.아르낭구 부모는 어린이들에게 쿠니아의 절벽아래 피어난 몇몇 식물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교 육시킨다.쿠니아가 싸움중 흘린 피로 식물에 독성이 배었기 때문이다.
결국 눈에 풍경을.집어넣는'관광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이곳을 이해하는 체계는 두 가지다.지질학과 추쿠르파,이중 후자는 특히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체험코스가 되고 있다.울룰루와 카타추타 주변 산책로를 돌면서 애버 리진 문화를이해하는 것이다.
호주의 노던 테리터리주정부는 지난 58년 울룰루일대 1천3백25평방㎞를.울룰루-카타추타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또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역시 이곳을 지구생태보전지구로 선포했다. 지난해 이곳을 찾은 호주 국내.외 관광객수는 35만여명.지난 92년 무려 30억호주달러(약 1조8천1백50억원)를 투자,사막 한가운데에 건설한.아이어스 록 리조트'(객실 6백90실)개장 이후 일약 국제적인 관광지로 발돋움중이다.
울룰루도 결국 관광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이곳에 흔한 키 4~5짜리 사막오크나무의 뿌리가 땅속 1백까지깊이 박혀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울룰루와 카타추타의 기반지층 역시 지하 6㎞까지 이어져 있다.지난 수만년 세 월과 마찬가지로 아르낭구들은 여전히 바위산을 숭배하고 있다.
여느 관광지와 달리 이곳에선 시간과 공간의.뿌리'가 유달리 깊어 보인다는 점,그것이 바로.비경'의 진짜 이유일 것이다.
울룰루와 카타추타는 각각 영어이름인.아이어스 록'과.올가스 마운틴'으로 더 유명하다.그러나 85년 주정부가 애버리진에게 이곳 토지소유권을 되돌려준 것을 계기로 산의 공식명칭도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현재 국립공원은 애버리진들이 주정부에 99년간(2057년까지) 임대하는 형식으로 공동관리한다.
[울룰루(호주)=임용진 기자] <관계기사 42면>

ADVERTISEMENT
ADVERTISEMENT